PUA - 365화 신비의 땅에서 (1)
◈ 365화 신비의 땅에서 (1)
루드거는 증기 열차의 일등석에 탑승했다.
일반 호실에 비해 배는 넓은 공간에 소파는 물론이거니와, 누워서 숙면할 수 있는 침대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온갖 술병과 음료가 진열되어 있었고, 벨을 누르기만 하면 직원이 나와 원하는 걸 가져다주기까지 한다.
그런 자리인 만큼 당연히 일등석의 푯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루드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내 돈으로 가는 것도 아니니까.’
일등석 푯값은 전부 헤이백 카다투샨이 지원해 줬다.
의뢰를 준 것이 그쪽이니, 이런 부분에서 비용을 전부 지불해 주는 것이다.
“와. 여기가 일등석인가요?”
그때 루드거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던 상대가 신기하다는 듯 내부를 둘러보았다.
“아르파. 일등석은 처음인가?”
“네. 판토스 씨와 레더벨크에 올 때는 좁은 호실을 써야 했거든요.”
아르파.
그는 이번에 루드거와 함께 「신비의 밤」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로 제가 가도 되는 건가요? 신비의 밤은 마법사만 갈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저는 마법사가 아니잖아요?”
“신비의 밤은 초대만 받는다면 마법사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갈 수 있다. 너는 내가 동행으로 데려가기로 했으니 괜찮다.”
“네. 그러면 최선을 다해 볼게요.”
특히 이번에 향하는 카사르 분지는 온갖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곳이다.
그중에서는 인간의 눈과 정신을 현혹하는 일도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 오토마톤인 아르파를 데려가면 분명 도움이 될 터였다.
“이렇게 단둘이서 움직이는 것은, 처음 눈을 뜬 이후로 오랜만인 것 같네요.”
“……그렇군.”
루드거는 델리카 왕국의 일을 떠올리고는, 꽤나 시간이 흘렀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열차가 기적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바깥 풍경이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하며 새하얀 증기가 열차의 뒤를 따라 긴 꼬리를 그리며 흩어졌다.
“이 열차는 어디로 향하는 건가요?”
“팰릭스 시티. 그곳이 종착지다.”
“아. 거기요?”
“어디인지 아나?”
“네. 팰릭스 시티.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중소 규모밖에 되지 않는 마을이었죠. 하지만 카사르 분지의 가능성이 발견된 이후에는 완전히 바뀐 곳이고요.”
팰릭스 시티는 「신비의 밤」이 개최하는 카사르 분지 인근의 도시였다.
이렇다 할 상품도, 경제적인 이점도 없는 그저 그런 마을.
하지만 신비의 밤 이후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소가 되며 그 입지가 엄청나게 거대해졌다.
마을은 발전해 도시가 되었고, 이제 팰릭스 시티는 대륙에서 손에 꼽는 관광지로 이름을 알렸다.
“잘 알고 있구나.”
“네. 책에서 읽었어요.”
아르파는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는다.
인간의 기억과 다르게, 오토마톤의 정보 처리 능력은 망각(忘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르파는 많은 책을 읽었고, 수많은 지식을 전부 체득했다.
보고 들은 한해서, 아르파는 모르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 저 음료 마셔 보고 싶어요!”
다만, 일상적인 부분의 상식이 많이 결여되어 있을 뿐이다.
루드거는 오토마톤이 음료수를 마셔도 되나? 하고 생각했지만, 특제라 괜찮다고 판단했다.
‘물속에 들어가도 멀쩡한데 뭐.’
게다가 아르파는 이전부터 음식물을 몰래 입에 대고 있었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맛이 궁금하다고 하는데, 과연 맛이 느껴지는 것은 둘째치고, 내부에 이물질이 끼면 큰일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르파는 섭취한 음식물을 분해하여 에너지로 전환, 그대로 기계 태엽 심장의 동력으로 만들어 버렸다.
음식을 먹을 줄 아는 인형이라니.
괜히 사람인 척 잠입을 시켜 전쟁에 써먹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적당히 마시도록.”
“네.”
아르파는 조금 전부터 궁금했던 음료들을 진열장 안에서 꺼내 한 모금씩 시음했다.
루드거는 저러다 혹시 정지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아르파를 지켜보았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기에, 루드거도 안도감을 품으며 창밖의 풍경을 살폈다.
레더벨크는 어느새 멀어지고 밀밭의 풍경이 보였다.
그마저도 오래 가지 않아 새로운 도시에 진입하여 완전히 사라졌다.
팰릭스 시티행 열차는 중간에 경유지에 멈출 때마다 많은 손님을 태웠다.
레더벨크에서 출발할 때 좌석의 10%도 채우지 못했던 열차는 어느덧 만석이 됐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을 꼽자면, 지금 열차에 탑승한 손님 중 태반이 마법사라는 점이었다.
‘전부 신비의 밤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인가 보군.’
주된 목적은 카사르 분지에 존재하는 신비에 대해 탐구.
하지만 모든 마법사가 그런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온갖 마법사들이 모인다는 점을 노리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다른 마법사들과 친분을 만들며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려는 것이다.
가령 지금 같은 상황 말이다.
“어? 루드거 첼리시 선생님 아니십니까!”
일등석이기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음에도 마법사들은 안으로 쉽게 들어왔다.
물론 실수인 척하면서.
그들은 이미 루드거가 이 자리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행동하며 아는 척을 했다.
“루드거 첼리시 씨도 이번 신비의 밤에 참여하시는 겁니까? 혹시 누구의 초대를 받으신 건…….”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저의 개인 좌석입니다. 이만 나가 주시겠습니까?”
“아, 아뇨. 저는 그저…….”
“나가 주시면 좋겠군요. 아르파. 손님을 내보내 드리도록.”
“네.”
아르파는 이번이 몇 번째인지도 모를 마법사를 가볍게 떠밀며 일등 칸에서 쫓아냈다.
마법사는 어떻게든 루드거와 연을 만들고자 했지만, 아르파의 무시무시한 힘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인기가 많으시네요. 리더.”
“이런 인기는 아무리 많이 줘도 사양이다.”
“조금 전으로 32번째예요. 처리하는 것이 귀찮다면 제가 입구를 지켜서 오는 족족 돌려보낼까요?”
루드거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되었다. 굳이 그렇게 귀찮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저는 딱히 상관없는걸요.”
“오히려 아무와도 만나 주지 않고, 너 혼자만 세워 놓으면 내 평판에 해가 된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면 그냥 가만히 있거라.”
“네. 그러면 그럴게요.”
다행히도 이후에 찾아오는 손님은 없었다.
계속 달리던 열차는 이윽고 종착역인 팰릭스 시티에 멈췄다.
문이 열리며 마법사들이 우르르 내렸다.
대부분 자신의 소속을 나타내는 문양이 새겨진 로브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로브 없이 개성적인 차림의 마법사들도 더러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떠돌이, 혹은 무소속 마법사였다.
다른 종족도 보였지만, 그래 봤자 간혹 엘프가 있는 것이 전부였다.
수인과 드워프들은 마법사가 적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기차역부터 사람들이 빽빽 들어차 있었는데, 뭔가 생기가 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경계하거나 경이롭게 여기는, 긴장되는 분위기가 가득할 뿐이었지.
“으으. 뭔가 공기가 무겁네요.”
“참아라.”
오죽했으면 아르파마저 마법사들 특유의 답답한 분위기를 느낄 정도.
루드거는 그런 아르파를 말 한마디로 가볍게 달래며 기차역을 빠져나왔다.
그중 일부는 루드거를 알아보았지만, 인파 때문에 함부로 다가오지 못했다.
루드거는 곧바로 기차역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마차에 탔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랜드리버 호텔.”
“랜드리버라. 꽤 부유하신 분이셨군.”
마부는 실실 웃으며 고삐를 잡고 크게 휘둘렀다.
놀랍게도 마차에는 어떠한 말도 없었다. 레더벨크에서 주로 운용하던 증기 골렘도 마찬가지였다.
그 대신 반투명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말 두 마리가 나타나 마차를 끌기 시작했다.
“마차에 각인된 마법으로 사역마를 소환하는 건가?”
“호오. 역시 마법사 나리라 그런지 한눈에 알아보시는구려. 맞소. 이곳에 워낙 많은 마법사가 찾아오기 때문에, 이런 탈것조차 마법이 깃들어 있소.”
루드거는 마차를 이끄는 말을 슬쩍 살폈다.
저걸 뭐라고 해야 할까. 유령마? 정령마?
순수 마력으로 이루어졌기에 마법수라 해도 좋았다.
대신 마법수와 달리 가진바 능력은 마차를 이끄는 물리력이 전부다.
말 그대로 마법수를 흉내 낸 모방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마법을 부여할 마력이 꽤 필요할 텐데. 효능만 보면 거의 영구 지속 같군.”
“영구 지속 맞소. 애초에 마나는 근방에서 끝없이 공급되니까 말이오.”
“아, 그런 거였군.”
팰릭스 시티는 카사르 분지와 가까운 마을이다.
땅 아래로 지맥이 흐르고 있어 이곳의 마력의 농도 또한 충만했다.
마나가 공급될 요소는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거리의 잘 포장된 도로에는 이쪽 말고도 다른 유령마가 이끄는 마차들이 더러 보였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별로 놀라지도 않는 걸 보면, 사실상 이 도시의 명물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엔 참 신기한 게 많은 거 같아요.”
아르파도 책에서 읽었던 것을 실제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하룻밤 머무를 숙소에 도착했다.
랜드리버 호텔.
팰릭스 시티의 가장 큰 번화가의 중심에 우뚝 선 고층 호텔로, 부유한 사람들만 머무를 수 있는 곳이었다.
루드거가 배정받은 룸은 VIP실.
당연히 돈은 헤이백 카다투샨 공작이 지불했다.
열차 일등석에 호텔의 VIP룸까지.
루드거는 지원을 받는 김에 아주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제대로 즐기지도 않을 호텔의 모든 서비스까지 풀로 예약했다.
당연히 헤이백은 그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따졌지만, 루드거는 가뿐히 무시했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갑은 루드거였다.
싫으면 다른 사람을 뽑았어야지.
‘노인네 투덜거리는 말 좀 들어 주고, 이런 곳에서 머무르면 오히려 싼 편이지.’
자신에게 계속 장난을 친 헤이백을 향한 루드거의 소소한 복수였다.
루드거는 아르파와 함께 호텔 로비로 향했다.
팰릭스 시티의 가장 유명한 호텔답게 로비부터 눈부신 빛으로 가득했다.
단순히 1층 내부만 살폈음에도 얼마나 돈을 쏟아부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
굳이 비교하자면, 쿤스트 경매장 겸 호텔을 하는 곳과 비슷하지만, 호텔로서는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루드거 첼리시 씨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로비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루드거를 알아봤음에도 호들갑을 떠는 반응은 없었다.
그만큼 이 호텔에는, 그에 준하는 유명인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이리라.
루드거는 넓은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손님들은 대부분 마법사여야 했지만, 최고급 호텔이라 그런지 마법사가 아닌 자들도 꽤 많았다.
‘돈 많은 사업가, 관광하러 온 대부호, 그 외에도 신비의 밤에 손님으로 참여하려는 사람들까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유해 보였다.
마법사들의 경우에는 상당히 강력한 마나를 풀풀 풍겼다.
루드거는 호주머니 안쪽에서 모노클을 꺼내 눈에 착용했다.
황실의 비고에서 가져온 [가능성의 눈]이었다.
그걸 착용하고 살피자 마법사를 더욱 확연히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이런 곳에 오는 마법사들인 만큼 다들 상당한 잠재력과 마나를 머금고 있군.’
[가능성의 눈]이 보여 주는 힘의 크기를 분석하며 상대방이 대충 어느 수준인지 판단할 무렵이었다.
호텔 로비의 입구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드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능성의 눈]이 인파 너머에서 흘러넘치는 거대한 마나를 포착했다.
아르파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입구를 빤히 응시했다.
“리더. 누군가 왔나 봐요.”
“그래 보이는군.”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요? 여기 오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다 유명인사일 텐데.”
“글쎄다.”
이 랜드리버 호텔에 머무는 투숙객들은 대부분 어딜 가도 목에 힘깨나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를 경외하지 않고, 경외를 받는 자들.
학은 같은 학을 봐도 고고히 존재할 뿐이다.
그런 학을 경외하는 것은 닭장 속의 닭뿐이다.
그런데 지금, 학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입구부터 풍겨 오는 분위기가 남달랐다.
‘봉황이라도 나타난 건가?’
루드거가 입구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인파가 갈라지며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
루드거는 무리의 가장 선두에 선 사람을 알아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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