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68화 Haunted Land (1)
◈ 368화 Haunted Land (1)
이른 아침이 되었다.
루드거와 아르파는 랜드리버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을 끝냈다.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네요. 아직 이른 시간인데.”
아르파는 이른 아침의 도시 풍경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산악 분지와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도시는 상당히 서늘했다.
그 때문에 희미한 안개가 도시 전역을 휘감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이 「신비의 밤」 당일이기 때문이지.”
“그럼, 지금 움직이는 사람들이 모두 마법사라는 건가요?”
“모두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마법사가 맞아.”
루드거는 한쪽 눈에 착용한 모노클로 거리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행인 중 8할은 저마다 마력을 머금고 있었다.
전부 마법사라는 소리였다.
물론 그 속에서 마법사의 수준이 나뉘고, 그중에서도 또 목적이 나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 하나같이 공통점을 지닌 것이, 신비의 밤이 개최하는 카사르 분지로 향한다는 점이었다.
“이대로 가면 저희가 탈 마차가 없을지도 모르겠는데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르파와 루드거의 앞으로 마차 한 대가 도착했다.
이번에도 마력으로 이루어진 말들이 이끄는 마차였는데, 마차를 이끄는 사람을 본 아르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어제 저희를 태워 주셨던 분.”
“좋은 아침입니다. 마법사님. 그리고 그 조수님.”
“예. 좋은 아침입니다.”
루드거는 마부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마차에 탔다.
아르파도 얼떨떨해하면서 마차에 올라탔다.
“언제 부르신 거예요?”
“어제 마차에서 내릴 때 돈을 얹어 주며 이 시간에 나와 달라고 했지. 당일에는 예약이 밀려 미어터질 것이 분명하니까.”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마차가 출발했다.
도시를 벗어난 마차는 카사르 분지가 있는 비탈길을 올랐다.
비탈길이라 해서 딱히 가는 데 불편함은 없었다.
작은 마을이 도시로 발전한 것처럼, 사람이 다닐 만한 곳은 완전히 개통되어 잘 포장된 도로가 생겼다.
시간이 흐르고 태양이 꽤 높게 떠올랐지만, 주위는 오히려 더 어두워졌다.
카사르 분지에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짙어졌기 때문이었다.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마차를 멈추며 그렇게 말했다.
아르파는 주변을 둘러보고 이곳이 카사르 분지가 아님을 확인했다.
“아직 거리가 남지 않았나요?”
“저희 같은 마부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이상 들어가면 대기 중의 과도한 마나 때문에 마차가 움직이지 않거든요.”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주변의 마차들에서도 손님들이 모두 내리고 있었다.
“아르파. 우리도 이만 가지.”
“네.”
마부에게 수고했다고 팁을 더 얹어 주자, 마부는 화색을 표하며 모자를 벗어 정중하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혹시 나중에 또 방문하실 일이 있다면 저를 찾아와 주십시오. 더욱 극진히 대접하겠습니다.”
마부가 떠났고, 루드거와 아르파는 포장된 길을 따라 걸었다.
분지로 향할수록 안개는 더욱 짙어졌지만, 길을 잃는 일은 없었다.
도로가 잘 깔려 있기도 했지만, 뿌연 안개조차 무색하게 만들 정도의 많은 사람이 줄지어 이동했기 때문이다.
여기가 어딘지 애매하다 싶으면 무조건 앞사람을 따라가면 도착할 게 분명했다.
“저기인가.”
루드거는 고개를 들어 올려 인파 너머를 살폈다.
주위에도 안개가 가득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마치 하늘에 있는 적란운을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돔 형태로 새하얀 막이 펼쳐져 있었다.
마력의 과포화로 인해 벌어진 자연의 신비로운 현상 중 하나였다.
그리고 저 백의 장벽 안쪽에, 카사르 분지가 있었다.
‘꽤 쟁쟁한 마법사들이 많이 모였군.’
모노클을 통해 보이는 마법사들의 마력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루드거가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듯, 이곳에 모인 마법사들도 아닌 척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상대방을 파악하고자 했다.
‘저 사람은?’
‘기억에 있는 얼굴이야.’
‘아케인 체임버에서 강의했던, 그 교사로군.’
그중 꽤 많은 마법사가 루드거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눈을 빛냈다.
루드거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많은 시선을 느꼈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리더. 주위에서 막 쳐다보고 있는 거 같은데요?”
“나를 알아본 거겠지. 하지만 당장에는 귀찮게 굴지 않을 거다.”
“왜죠?”
“지금은 저 앞으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그때 앞에 줄을 서 있던 마법사들로부터 자그마한 소요가 흘러나왔다.
경악, 감탄, 혹은 다른 무언가.
그 소음은 안개를 타고 물결처럼 퍼지며 현장에 있는 모두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리더. 보이나요? 저 앞에.”
아르파의 뛰어난 안력이 앞에 벌어지는 일을 잡아냈다.
“문이 열렸어요.”
아르파의 설명은 어딘가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했지만, 실제로 그 광경을 접한 사람은 그 말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카사르 분지를 뒤덮은 새하얀 안개.
그 안개의 한쪽 벽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누군가 뚫은 것이 아닌, 자연적으로 열린 길.
1년에 단 3일밖에 열리지 않는, 카사르 분지를 향한 출입구가 열린 것이다.
“카사르 분지다!”
“문이 열렸어!”
“어서 들어가자!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해!”
마법사들은 체통을 지킬 생각도 하지 못하고 열린 통로를 통해 우르르 들어갔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가 꽤 많았지만, 통로의 크기는 그보다 훨씬 더 컸다.
마치 성문이 타국의 사절단을 환영하듯 활짝 열린 것 같았다.
루드거와 아르파도 인파를 따라 걸었다.
통로의 안쪽은 신기할 정도로 고요했다.
“왜 이런 길이 열린 걸까요?”
“과도한 마나의 흐름이 어느 지점에서 서로 충돌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충돌이요?”
“그래. 간혹 흐름을 벗어난 다른 흐름이 부딪치는 거지. 보통은 충돌하더라도 더 거대한 힘이 집어삼키지만, 자연의 신비 때문인지 힘의 크기가 대등해져서 서로 상쇄가 되는 일이 벌어진다더구나.”
“아. 그래서 그 상쇄된 마력의 자리에 공백이 생기고.”
“이렇게 구멍이 뚫리는 거다. 이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 마력의 진공 상태. 어딜 가서 흔하게 보기 힘들지.”
입구부터 흔치 않은 상태로 존재하니 당연히 마법사들의 눈이 뒤집힐 수밖에.
꽤 긴 통로를 지나자 시야가 탁 트이며 광활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오오.”
“이거, 정말 절경이로군.”
카사르 분지에 처음 방문하는 마법사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행동이 체통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그만큼 카사르 분지의 풍경은 아름다웠으니까.
바깥에서 보면 그저 새하얀 안개로 뒤덮인 돔이었지만, 내부는 또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탁 트인 들판 위로 자그마한 숲들이 자리 잡았고, 곳곳에서 맑은 냇물이 흘렀다.
그것만으로 깊은 산속의 자연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지만.
카사르 분지의 특이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은은한 색감.
푸르스름한, 마치 산호초 바닷속에 들어온 것 같은 에메랄드의 빛무리가 카사르 분지 전역을 드리우고 있었다.
더불어 노란색과 연분홍, 마젠타 컬러의 자잘한 빛들이 수채화처럼 뒤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두 눈을 뜬 채로 꿈을 꾸는 것 같다.
‘멋지군.’
루드거도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대자연의 절경을 구경했고, 이제는 어지간한 걸 봐도 크게 동요하지 않지만.
카사르 분지는 그런 루드거에게도 큰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주어진 시간은 3일이야! 다들 정신 바짝 차려!”
단체로 온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잊지 않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일부 마법사들은 경치를 구경하고, 일부 마법사는 바쁘게 움직인다.
여기서부터 서로 어떤 것을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지 확연하게 갈렸다.
“저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전초 기지다.”
루드거는 우르르 움직이는 마법사들을 살폈다.
자신들이 서로 동일한 학파라는 걸 증명하듯, 그들은 같은 문양이 박힌 새하얀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사들의 축제가 시작되는 연회장이기도 하지.”
아르파는 그것이 무엇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카사르 분지의 더 깊은 안쪽에는 마법사들이 설치한 간이 텐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마법 등불로 여러 빛을 내며 거대하게 우뚝 솟은 삼각 텐트들이 밀집한 모습은, 카사르 분지 특유의 분위기와 함께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중간에 꽤 큰 냇물이 흘렀는데, 그곳을 건너기 쉽도록 나무로 만든 다리까지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목재 다리 위에서 아르파는 냇물을 신기한 듯 내려다보았다.
흐르는 물조차 거대한 마력을 머금었기 때문인지, 은은하게 에메랄드색으로 빛나고 있었으니까.
“저 안에도 물고기가 사네요?”
“평범한 물고기는 아닐 거다. 주어진 환경에 맞춰서 진화하거나, 과한 마력을 받아 변이한…… 굳이 따지자면 원시 영수(靈獸)라 볼 수 있겠지.”
“저 작은 물고기들이요?”
“전부는 아니다. 사람이 마력을 많이 지니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마법사라 불리지 않듯, 짐승이 저렇게 힘을 머금었다고 전부 영수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분지 중앙의 전초 기지 너머로 빽빽한 숲이 하나 보였다.
“하지만 이곳이라면, 자신의 힘을 다루는 법을 터득한 진짜 영수가 존재하겠지.”
“실제로 영수의 목격담은 없지 않았나요?”
“간혹 누군가 신비로운 짐승을 마주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증거라 할 만한 게 없었다. 그래도 입소문이 끊이지 않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아르파가 호기심에 눈을 빛냈다.
“와. 영수라니. 무척 궁금하네요. 지금까지 기록으로만 알려진 존재잖아요.”
“확실히. 영수는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군.”
“리더. 저 궁금한 게 하나 생겼어요. 영수의 이빨을 한스 씨가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갑자기?
하지만 막상 들어 보니 이쪽도 궁금해지긴 했다.
만약 정말 영수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리고 녀석이 인간에게 적대적인 감정이 없다면 이빨이나 발톱 부스러기라도 받아 낼 수 있으려나.
물론 한스는 그걸 선물로 받는다면,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일 것이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라도 한번 구해 보는 것도 괜찮을지도.
그런 생각을 품으며 전초 기지에 도착하자 시끄러운 소음이 한꺼번에 확 밀려왔다.
여기저기 설치된 텐트와 천막에 가판대들이 넘쳐났고, 그곳에서 물건을 도열하고 파는 마법사들의 모습이 더러 보였다.
주홍빛 마법등과 시끌벅적한 소리, 여기저기서 자그마한 마법을 뽐내는 마법사들.
그야말로 마법사들의 야시장이었다.
‘산업 혁명의 시대에 접어든 지 꽤 오래된 세계였지만, 이곳만큼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군.’
루드거와 아르파는 예약된 텐트에 도착했다.
초대장을 받은 입장이라, 텐트가 미리 준비되어 있던 것이다.
‘인맥이 있으면 확실히 편하긴 편하군.’
천막 안쪽은 생각 이상으로 넓었다.
안쪽에는 카펫과 소파 등, 생필품 또한 모두 갖춰져 있었다.
단순히 두 사람이 쪼그리고 지낼 텐트가 아닌, 사람 10명이 들어가도 거뜬할 대형 텐트.
모든 텐트가 이러진 않을 테고, 아마 이곳이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크고 비싼 곳이리라.
“리더. 저는 근처를 둘러보고 지리를 익혀 올게요.”
“그래.”
아르파를 내보낸 루드거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카사르 분지에 결국엔 도착했군. 이제 이곳에서 레슬리를 찾아야 하는 건가.’
더불어 그 비밀의 저택이란 곳의 서고에 들어가 고서로 적힌 책의 내용을 확인까지 해야 했다.
그걸 감안하면 3일의 시간은 꽤나 촉박하다.
‘하지만 여기에 모인 마법사들의 숫자만 해도 천 명이 넘는다. 그중, 정체를 숨긴 레슬리를 찾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오히려 억지로 접선하려 들었다간 의심을 사기 딱 좋았다.
일단은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레슬리가 하려는 짓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규모만 따지고 본다면 절대 평범한 일은 아니다.
그걸 위해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필요할 터.
그 단서를 잡아내면 레슬리를 찾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루드거가 그렇게 생각할 때, 텐트 안쪽에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아르파인가?”
조금 전에 나간 아르파가 돌아왔다면 분명 말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침입자인가?
루드거의 눈매가 날카롭게 바뀌며 그의 기세가 변했다.
루드거는 허리춤에서 자연스럽게 단검을 꺼내 들어 소매에 가리듯 숨긴 뒤, 조금 전 그림자가 보인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상대가 허락도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는 건,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
그러니 기습을 당하기 전에 먼저 친다.
그럴 생각으로 루드거는 그림자가 숨어든 서랍장 너머를 살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쪼그려 앉아 있는 존재를 확인하곤 눈에 힘을 탁 풀었다.
“……아이?”
서랍장 뒤에 숨어 있던 것은 이제 6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대체 왜 이곳에 아이가.’
아이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카사르 분지에 찾아오는 사람 중에서는 관광을 목적으로 오는 자들도 있으니까.
어쩌면 가족 단위로 왔다가, 길을 잃어서 이곳에 숨어들어 온 걸지도 모른다.
루드거는 천천히 몸을 숙여, 아이에게 다가갔다.
“꼬마야. 길을 잃었니?”
아이는 루드거를 보며 겁먹은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은?”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이 없다는 건지, 아니면 여기서 떨어졌다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때 아이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찾고 있어요.”
대체 뭘 찾는다는 걸까.
루드거가 그렇게 물으려 할 때 마침 아르파가 도착했다.
“리더! 저 왔어요. 여기에 책자도 있더라고요. 비록 전초 기지에 한해서지만 지도도 있고요.”
“잘 왔다. 아르파. 그보다 이 꼬마 아이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보아하니 부모님을 잃은 것 같은데, 찾아 줄 수 있겠나?”
“네?”
아르파는 루드거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리더,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엔 아무도 없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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