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73화 체셔 타이거 (2)
◈ 373화 체셔 타이거 (2)
소란은 길게 이어지지 않고 빠르게 정리됐다.
탐험대를 습격한 체셔 타이거 3마리는 결국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머리가 으깨져서 죽은 체셔 타이거는 루드거와 아르파의 작품.
다른 두 체셔 타이거는 각기 전신이 강철의 창에 뚫린 뒤 전기에 지져지거나, 혹은 전신에 기이한 수포가 올라와 피를 토하고 죽었다.
시체의 상태만으로도 싸운 마법사들의 특색이 돋보였다.
그중 가장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아르파였다.
아르파가 체셔 타이거를 죽이는 모습을 목격했던 마법사들은 저들끼리 숙덕거렸다.
“저 꼬맹이. 대체 정체가 뭐지?”
“루드거 첼리시와 함께 다녀서, 그냥 학교 학생인 줄 알았는데.”
“봤어? 맨손으로 그 체셔 타이거를 휘둘렀어. 기사인가?”
“저 어린 꼬맹이가 기사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생도도 저렇게 어리진 않아.”
“그게 아니면 저 힘은 어떻게 설명하게?”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아르파가 맨손으로 거대한 호랑이를 죽였으니,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죽인 대상이 호랑이라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카사르 분지의 마력을 오랫동안 흡수하며 한 구역의 패자가 된 녀석이다.
셋이서 한 팀이라지만, 그런 놈을 때려잡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마법사들은 아르파가 재능이 매우 뛰어난 견습 기사라 떠들었다.
그리고 그 실력이라면 머지않아 금방 기사가 되리라고도.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를 엿들은 로이나가 아르파에게 물었다.
“기사였어요?”
“저 기사 아니에요.”
“기사가 아닌데, 어떻게 그런 힘을…… 아!”
로이나는 대충 눈치챘다는 듯 아르파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이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알았어요. 아닌 거로 해 줄게요.”
“네?”
“대충 그런 거죠? 들키면 안 되는 거. 저 눈치 빠르거든요.”
“진짜 아닌데.”
눈치가 빠르다니. 이쯤 되면 더럽게 없는 거 아닌가?
이 일련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르파를 향해 루드거가 그에게만 들리게끔 말했다.
“원래 그런 거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익숙한 일이지.”
“리더랑 저는 경우가 다르지 않나요?”
“뭐가 다르다는 거지?”
“그…….”
아르파는 이걸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
생각해 보면 루드거가 지금까지 겪어 온 일의 일부나마 통하는 면도 있었다.
아르파는 수긍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 이상으로 지금 벌어지는 후속 처리 과정이, 아르파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으니까.
“저건 뭐죠?”
“시체 가방.”
루드거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말 그대로 시체를 담는 가방이지. 일종의 마법 물품으로 부패 방지를 위한 저온 기능과 경량화가 걸려 있다.”
“그런 걸 대체 왜…….”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가져온 거겠지. 시체를 버리고 가면 고인에게 모독이 될 테니.”
“각오하고 가져온 거라니. 뭔가 안타까운 일이네요.”
“이 카사르 분지에서 시체라도 무사히 건지는 것이 차라리 다행인 걸지도 모르지.”
체셔 타이거의 습격으로 발생한 사망자는 23명.
그 결과, 짐꾼 15명과 마법사 8명이 죽었다.
체셔 타이거의 습성과 특징을 미처 깨닫지 못해서 벌어진 참사였다.
“이봐! 언제까지 여기에 계속 머물 거야! 어서 출발하자고!”
그때 한쪽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소리와 함께, 두 집단이 마찰을 빚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따지는 구도였는데, 따지는 쪽은 연구원으로 보이는 노인들이었다.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지? 이곳에서는 하루도 아니고 1분 1초가 금 같은 시간이야. 그런데 이렇게 머뭇거리면, 대체 어느 세월에 저택에 도달하나?”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중에서는 최전선에서 싸운 전투 마법사가 있고요.”
“죽은 건 죽은 거지. 시체만 챙겨서 이동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그게 당신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은 마법사들을 위해 할 말입니까?”
“애초에 그런 거래였지 않나. 우리는 지식을 주고, 그쪽은 무력을 준다. 그사이에 벌어지는 참사는 누구의 책임도 아니지. 그렇게 말했을 텐데?”
“최소한의 안타까운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겁니까?”
“흥. 우리가 사람 애도하러 이곳에 왔나? 우린 지식을 탐구하기 위해서 찾아왔어. 그것 외엔, 우리가 신경을 쓸 일이 아니야.”
늙은 학자의 말에 전투 마법사가 이를 악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루드거와 아르파가 그 광경을 지켜볼 때, 잠시 어디를 다녀온 로이나가 학자들을 알아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진리학파네요.”
“아는 사람들입니까?”
“알다마다요. 이쪽 업계에서는 유명해요. 지식을 탐구하고 마법을 연구하는 학파인데, 대부분 나이 지긋한 노인네들로 구성되어 있죠.”
“좀 좋지 않은 쪽으로 유명한 모양이군요.”
뭐, 지금 따지고 드는 모습만 봐도 충분히 그래 보였다.
진리학파를 향한 주변 시선도 곱지 않았으니까.
“유명하죠. 일단 저기 소속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저명한 사람들이고, 실제로 지식적인 부분에서 뛰어나지만…… 엄청나게 자만하거든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명을 경시하고, 자신의 고집으로 가득 차 버리죠.”
“주변 반응을 보면 이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군요.”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사고가 난 일이 매년 빠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쪽의 보호 의뢰는 어지간하면 다들 받지 않으려 하지만…….”
“돈을 많이 준 겁니까.”
로이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짜증 나는 사람들이어도 보수를 크게 부르면 거기에 이끌리는 자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흠.
루드거는 진리학파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어쩌면 저기에 레슬리가 숨어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에 현장 정리가 끝나고, 다시금 탐험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 체셔 타이거의 습격 때문인지 마법사들은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감정에 동요되는 마력이 요동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 덕분이라 해야 할지, 체셔 타이거 이후로 습격은 딱히 없었다.
“다들 엄청나게 예민해졌네요.”
그 사이에서 아르파가 순수하면서도 눈치 없는 말을 꺼냈다.
물론, 그 목소리는 루드거와 로이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았다.
“사람이 죽었으니까.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여전히 숲을 고집하는 것도 웃기군. 조금 돌아서 가도 평야를 통한다면 안전할 텐데.”
“그건 아니에요.”
로이나가 칼같이 답했다.
평소 우유부단해 보이는 그녀답지 않게 드물게 단호한 어조였다.
“루드거 선생님은 이곳이 처음이라 아직 모르시겠지만, 카사르 분지는 평야라고 해서 방심할 수 없어요. 아뇨. 오히려 평야가 더 위험해요. 네, 아주 위험하죠.”
“이유가 있습니까?”
“이 땅에 깃든 신비의 힘 때문이에요.”
“무언가 일이 있었나 보군요.”
“……저택으로 향하는 다른 루트를 뚫으려던 마법사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숲이 아닌 평야를 통해 돌아서 가려 했죠. 그게 더 안전해 보인다면서요.”
과거를 회상하는 로이나의 목소리는 약간이지만 떨리고 있었다.
“전부 다 4위계로 구성된 마법사들이고, 실전 경험도 풍부한 사람들이었죠. 짐꾼들도 전장에서 구르던 용병들이었고요. 객관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조합이었어요. 그 사람들은 숲을 돌아서 시야가 탁 트인 평지를 통해 움직이려 들었죠. 과하게 가려는 것도 아니에요. 숲의 경계선을 따라서 가려고만 했죠.”
“의도는 나쁘지 않군요.”
“다만, 그 사람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면, 이 땅에 깃든 기이한 힘이겠죠. 루드거 선생님. 그 사람들이 전초 기지를 벗어나 평지로 향하는 순간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보지 못했으니 그걸 알 리가 없었다.
물론, 로이나도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사라졌어요. 감쪽같이. 평지를 걸어간 지 채 30m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어진 일이었죠.”
“사라졌단 말입니까?”
“네. 마치 허깨비처럼, 눈을 한 번 깜빡이니 사라졌어요. 4위계 마법사들로 구성된 십여 명의 집단이 일제히 증발한 거죠. 더 무서운 건 그다음에 벌어진 일이에요.”
“또 뭐가 있었습니까?”
“다음 날 아침. 그들이 사라졌던 자리에 무언가 나타났어요. 그것은 새하얀 뼈 무더기였어요.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은, 정확히 사라진 사람들의 숫자와 일치했죠.”
“…….”
“누군가 가져다 놓은 것도 아니에요. 주위에 그런 흔적은 없었으니까요. 사라진 것처럼, 나타난 것도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죠. 그리고 시간도 고작 하루 남짓뿐인데, 유해는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았어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죠.”
로이나는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지 자신의 손바닥으로 팔뚝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게 5년 전의 일이네요. 제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요.”
그녀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어요. 말 그대로 상식을 초월한 현상이었고요. 그 당시의 저는 렉서러가 아니었지만, 지금 다시 그 일을 겪는다고 해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요. 아니, 어쩌면 보고 싶지 않을지도.”
그 사건 이후로, 숲의 길 외에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마법사들은 없었다.
이 땅은 그 자체만으로 별세계였고, 그 별세계 안에는 또 무수한 별세계가 펼쳐져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숲이 더 안전해요. 빽빽하게 자란 수림이 마력의 과도한 흐름을 억제해 주거든요. 해안가의 방파제처럼요.”
“거대한 재해를 마주할 바에야, 그냥 위험한 짐승이 있는 길을 지나가는 게 훨씬 더 낫다는 거로군요.”
“그걸 깨닫는 동안 많은 사람이 죽었죠.”
시간이 꽤 있었다면 평야 쪽으로도 개척할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이곳은 1년에 단 3일밖에 열리지 않는 미지의 땅이다.
숲길을 개척한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한 셈이었다.
‘신비의 땅이지만, 그 이상으로 죽음이 넘실거리는 곳이기도 하군.’
이런 곳에서 매년 신비의 밤을 개최하는 마법사들의 정신머리를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아니, 지식을 위해서라면 위험도 감내하는 마법사들이 많은 걸 생각하면 오히려 그쪽이 비정상일지도.
‘그보다 다른 짐승은 더는 안 나타나는 건가?’
체셔 타이거 무리를 없앤 덕분인지 행진이 막히는 일이 없었다.
간혹 위험 식물군을 지날 때 조금 느려졌을 뿐, 다들 충분히 긴장하고 있어서인지 더 이상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벨라루나가 봤으면 좋아 죽었을지도 모르겠군.’
그때 루드거의 기감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뭐지?’
끈적거리는 얇은 기름 막이 몸을 한차례 훑고 지나간 느낌이다.
시선은 아니다. 마력 탐지와도 다르다.
그것은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이한 것이었다.
‘무언가 방금 탐험대 전체를 훑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는 듯했다.
이 자리에서, 오직 루드거만 느낀 것이었다.
피부에 미약하지만, 소름이 돋아 있었다.
‘체셔 타이거의 습격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그렇다는 것은 지금 탐험대를 지켜보고 있는 녀석은, 체셔 타이거 그 이상의 존재라는 말이었다.
오랫동안 마력을 머금으며 유사 마법까지 펼치는 체셔 타이거보다 더 위험한 녀석이라니.
‘어쩌면 정말로 이곳에는 지성을 지닌 영수가 존재할지도 모르겠어.’
무분별한 습격도,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어쩌면 녀석은 이 숲의 지배자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루드거는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만약 만나게 된다면, 이빨 하나 얻을 수 있으려나?’
* * *
오전 내내 이어진 행군은 정오가 될 무렵에 끝났다.
울창하게 자라난 나무들이 듬성듬성해지더니 이윽고 숲이 끝난 것이다.
숲 너머에는 야트막한 언덕이 하나 있었고, 그 위로는 놀랍게도 대저택이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오오오. 드디어.”
“저기가 이 카사르 분지에 존재한다는 비밀의 저택인가?”
처음 보는 자들도, 이곳에 몇 번 찾아온 자들도 저택의 위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루드거 또한 흥미로운 시선으로 저택을 살폈다.
‘방금 막 지어진 것처럼 새집 같군.’
아주 오래전에 지어진 뒤로 심지어 관리하는 사람도 없을 텐데 저택의 외형은 갓 지은 것처럼 깔끔했다.
하지만 계속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찾아온 이유는 저택을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니까.
이제 이 대인원들은 저택의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괜찮습니까? 이렇게 우르르 몰려가도.”
“으음. 루드거 선생님은 이번이 처음이시니 의아해하실지도 모르는데, 이 정도 인원이 다 들어가도 상관없어요.”
“저택이 넓어서 그렇습니까? 그렇다 해도 이 정도 숫자가 동시에 움직인다면 여간 북적이는 것이 아닐 텐데요.”
“저 저택에는 사람이 몇 명이 들어가도 상관이 없어요. 아마 이 자리에 300명이 아니라 천 명이 있어도, 저 저택에는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로이나는 그런 확신을 담아서 말했다.
“그리고 300명이 동시에 뭉쳐서 움직이지는 않을 거예요. 정확히는 그럴 수 없을걸요.”
“저택에 깃들어 있는 신비의 힘 때문이군요.”
“맞아요. 저택 내부에서부터는 이제 팀 단위로 움직여야 해요. 최소 5명부터 최대 20명까지. 그게 저택에 주어진 ‘룰’이죠.”
최대 인원도 있지만, 최소 인원도 갖춰야 한다니.
루드거는 아르파와 로이나를 살폈다.
이렇게 해도 숫자는 셋에 지나지 않는다.
모아야 할 사람은 최소 둘. 아니, 어쩌면 아르파 때문에 1명을 더 모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르파는 이렇게 보여도 인간이 아니라, 저택이 그렇게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저마다 팀을 꾸리는 마법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300명 중 순수 연구를 위해 찾아온 마법사들의 숫자는 200명 정도.
짐꾼들은 바깥에서 대기하고, 전투 마법사들 또한 외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일부 남는다.
그렇다 해도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200명이 그냥 넘으리라.
“일단 사람을 모아야겠군요. 로이나 씨. 가능합니까?”
“네? 저, 저는 친한 마법사가 없는데요.”
곧바로 고개를 젓는 로이나의 모습에 루드거는 괜히 물었나 싶었다.
그때 루드거를 향해 나이 지긋한 마법사가 다가왔다.
“내가 같이 가 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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