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74화 비밀의 저택 (1)
374화 비밀의 저택 (1)
새하얀 수염을 길게 기르고, 한 손에는 금장이 가득한 지팡이를 쥔 노인이었다.
요즘 시대 마법사들은 깔끔한 양복 위에 가벼운 외투 느낌으로 로브를 입는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노인은 어떤 의미로 보면 매우 이질적이었다.
허름한 복장 위에 두른 커다란 로브.
전형적인 옛날에 볼 법한 마법사의 행색이었으니까.
다만,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특유의 외모와 분위기에 맞물려 오히려 이보다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
루드거는 저 마법사가 누구인지 알았다.
현자 림레이.
그가 눈여겨봐야 할 마법사 중 하나였다.
루드거는 림레이를 향해 정중히 물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림레이 마법사님. 루드거 첼리시라고 합니다.”
“어어.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어. 조금 전 호랑이와 싸운 모습도 눈여겨봤고. 잘 싸우던데?”
……뭔가 말투가 생각 이상으로 경박한데?
루드거는 내심 당황하면서도 그것을 일절 드러내지 않으며 답했다.
“과찬이십니다. 그보다 방금 하셨던 말씀은…….”
“아. 사람을 구하냐고? 그 말대로야. 거기 보니까 3명밖에 없는데, 저기 들어가려면 5명은 있어야 하거든? 그러니 내가 같이 가 줄게.”
함께해도 좋냐도 아니고, 같이 가 준단다.
선심을 쓰는 그 말투에 루드거는 어찌할 줄 몰랐다.
“……저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니, 일행과 논의해 보겠습니다.”
“엉? 뭘 그런 귀찮은 짓을 해? 그냥 내가 같이 가 준다니까?”
“그걸 감안해도 1명이 더 비지 않습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터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루드거가 단호하게 말하자 림레이는 에잉, 하고 혀를 찼다.
그래도 가만히 자리에 서 있는 걸 보면, 기다려 주긴 할 생각인가 보다.
루드거는 곧바로 로이나를 데리고서 조금 떨어진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바로 물었다.
“저 사람이 현자 림레이,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왜 현자입니까?”
다짜고짜 현자에게 왜 현자라 묻는 루드거의 말은 꽤 이상하게 비춰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림레이의 행동을 본 사람이라면, 루드거가 무엇을 물어보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아. 저분이 워낙 이상하시기는 하죠.”
“보통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하는 모양이 꼭…….”
“노망난 할배 같다고요?”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걱정 마세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그러면 왜 현자라 불리는데?
루드거의 그런 시선을 느겼는지 로이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림레이 마법사님은 원래 저런 분이 아니었어요. 예전에는 현자라는 말에 걸맞은 총명함을 지니셨죠.”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군요.”
“저도 들은 거예요. 너무 많은 마법의 지식을 탐구하시다가 그 부작용으로 저렇게 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뇌 쪽에 말이에요.”
루드거는 로이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했다.
그러니까 림레이는 원래는 총명한 마법사였고, 현자라는 이명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나친 마법의 탐구로 인해 뇌에 무리가 가 버렸고, 부작용이 생겼다.
그 때문에 인자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꼬장꼬장한 노인네의 모습만 남았다고.
‘치매인가?’
물론, 진짜 치매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
다만, 뭐가 어찌 됐든 뇌의 일부가 맛이 간 6위계 마법사가 자신을 이쪽 팀에 끼워 달라고 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거다.
림레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는 것이다.
‘행동만 보면 영락없는 노인네지만.’
마법의 실력은 6위계.
심지어 소속도 자신의 이름 하나를 건 1인 학파뿐이다.
‘저 사람이 레슬리일 가능성은?’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기다렸다는 듯 이쪽에 접근한 그 행동이었다.
림레이가 과연 퍼스트 오더 레슬리인가 아닌가.
그것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곁에 두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레슬리가 아닐 가능성도 있어. 오더 시노드에서 보았던 그는 꽤나 철저하고 합리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자가 이렇게 경박한 방식으로 접근을 했으리라곤 생각이 들지 않아.’
연기일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로이나가 알 정도로 소문이 났다면 단순한 연기는 아닐 터다.
뭐가 어찌 됐든, 당장 저택에 들어갈 필요가 있는 입장에선 사람 하나가 귀한 처지다.
“로이나 씨가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저, 저요? 제 의견을 묻는 건가요? 저, 저 따위의 의견을…….”
“서로 친한 사이니, 물어보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치, 친한 사이?”
로이나는 그 단어에 꽂힌 건지 헤헤 하고 헤픈 웃음을 흘렸다.
흠. 이쪽도 진짜 생각 이상으로 단순하군.
뭐, 실제로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는 사이이니 립 서비스 정도는 해 줄 수 있다.
“친구 사이에 조언 정도는 구할 수 있죠.”
“치, 친구…….”
그 한마디에 로이나는 완전히 넘어오고 말았다.
그녀는 용기를 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림레이 마법사님은 괜찮을 거예요. 성격은 저러셔도 그 지식과 능력은 어딜 가는 게 아니니까요. 오히려 도움이 되겠죠.”
“문제가 있다면, 꽤 독선적이고 자존심 강한 성격입니다. 저로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짧게나마 나눈 대화로도 확실히 느껴지더군요.”
“어, 그건…… 실력을 생각하면 나름 견딜 수 있을 만한 요소가 아닐까요?”
로이나도 마땅한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겠는지 그냥 참고 넘기자 같은 소리를 꺼냈다.
“일단은 제안을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 봐야겠군요.”
“네. 득이 실보다 더 많으니까요.”
두 사람은 합의한 뒤 다시 림레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일단은 받아들이기는 할 텐데, 저 제멋대로인 성격을 어떻게 감당할지 고민을 하며 말이다.
그러나 그 걱정은 놀라울 정도로 쉽게 종식됐다.
바로 아르파 덕분이었다.
“껄껄걸. 그래. 이 할애비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느냐?”
“네! 엄청 재밌어요!”
순진무구하게 웃으며 림레이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아르파.
루드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둘은 어느새 친해져서는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아르파를 대하는 림레이의 태도였다.
림레이는 이전까지 예민하고 불만이 가득해 보이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치 손주를 예뻐하는 지극정성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었다.
“사이가 좋아지셨군요.”
루드거가 묻자 림레이는 조금 전까지 지어 보이던 환한 미소를 싸악 지우며 루드거를 돌아봤다.
“뭐야! 왜 이렇게 늦었어! 이 늙은이를 기다리게 하다니!”
“……잠시 중요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지체된 모양입니다.”
“아니, 내가 가 준다는데 뭘 자꾸 그렇게 딱딱하게 굴어? 어?”
림레이는 이 상황 자체가 퍽이나 짜증이 나는지 인상을 팍 구겼다.
“할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그때 나선 것이 바로 아르파였다.
아르파가 웃으면서 림레이를 달래자, 그는 곧바로 얼굴을 활짝 폈다.
“허허허. 그래. 우리 아르파가 그렇게 말하니 이 할애비가 들어줘야지. 암.”
“…….”
가면을 쓰는 것처럼 바뀌는 태도에 루드거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 양반 진짜 노망난 거 아니야?
그래도 다행이었다.
지금 광경을 보면 림레이가 무분별하게 날뛰지는 않을 테니까.
‘현자 림레이는 아르파가 맡아 주면 되겠고. 이제 남은 것은 1명인가.’
주위에서 적당한 사람을 구할까 고민하던 차에, 이번에도 낯익은 얼굴이 먼저 다가왔다.
“자리가 하나 비어 있는 것 같은데.”
“……셈파스.”
“내가 거기에 끼어도 되겠나?”
노숙자와 같은 몰골의 셈파스.
미친개라는 이명이 붙은 마법사인 그가 직접 찾아오다니.
“왜 갑자기 우릴 찾아온 거지?”
“다른 마법사들은 나를 받아 주지 않더군.”
“그렇군.”
미친개라는 이명을 지닌 셈파스를 들이는 것은 확실히 리스크가 큰 행동이겠지.
“그쪽도 저택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싸움밖에 하지 못하는 나지만, 이래 보여도 마법사니까. 특히 최근에 벽을 느껴서, 어쩌면 이 저택에 그걸 뛰어넘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셈파스의 의견은 합당했기에 루드거는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셈파스를 쫓아낸들 더 나은 사람이 올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미친개라는 이명이 걸리기는 하는데, 적어도 나한테 보여 주는 태도는 꽤 얌전하니 나쁘지 않아.’
게다가 마법 실력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전투법이 자신과 닮았다는 것이 꽤나 좋은 쪽으로 작용했다.
“좋다. 3일 동안 잘 부탁하지.”
“이쪽이 할 말이야.”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했다.
이렇게 총 5명이 모였고, 저택에 출입이 가능한 최소한의 인원을 충족했다.
저택으로 움직이려고 하니, 주위에서 날아오는 시선이 상당히 많았다.
다들 아닌 척해도, 이쪽을 상당히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그야 그런가.’
5명밖에 되지 않는 팀에 무려 6위계 렉서러 마법사만 2명이다.
심지어 나머지 하나는 실전 마법의 베테랑인 셈파스이고, 다른 하나는 괴력을 발휘하는 어린 소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팀의 리더로 보이는 루드거 첼리시까지.
‘하지만 실상을 놓고 보면, 그렇게 매력적인 조합은 아닌데 말이지.’
렉서러 마법사가 둘이지만, 한쪽은 성격이 괴팍한 꼬장꼬장한 노인네고, 다른 한쪽은 사교성과 자존감이 바닥인 부끄럼쟁이다.
심지어 실전 마법의 베테랑은 미친개라 해서, 조금만 시선이 마주치면 곧바로 싸움을 거는 미친 전투광이다.
거기에 아직 지식이 부족한 오토마톤까지.
그야말로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따로 없다.
‘여기서 내가 제일 정상인가.’
일행들이 그 말을 들었다면 양심이 있냐고 통탄했을 것이다.
특히 루드거의 과거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아는 한스가 들었다면, 이 인간이 머리가 드디어 이상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천만 다행히도 루드거의 속내를 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들어갑시다.”
루드거는 팀을 이끌고 저택을 향해 다가갔다.
활짝 열린 저택은 어딘가 음산함이 느껴졌다.
진하게 낀 안개가 그 분위기에 정점을 찍었다.
“정원도 손질이 잘돼 있군.”
그때 아르파가 정원의 꽃에 손을 대려고 했다.
“조심해요!”
로이나는 소스라치게 외치자 아르파가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물었다.
“왜요?”
“왜, 왜냐니. 이곳 저택의 식물은 함부로 만지면 안 돼요! 전부 마력을 머금은 식물이라, 무슨 위험을 지닌 건지 모른다고요!”
“위험이요?”
“독이 있다거나, 혹은 손을 물어뜯는다거나, 아니면 환각이 보인다거나, 피부가 녹아내린다거나. 그런 경우가 엄청나게 많아요.”
아르파가 이제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부터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네요.”
“그나마 정원은 차라리 나아요. 바닥에 깔린 길만 따라서 잘 걸으면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으니까요.”
어쩐지 주변 마법사들도 질서정연하게 길만 따라간다 싶었다.
일행들은 정원을 지나 이윽고 저택의 입구 앞에 섰다.
문을 활짝 열려 있었는데, 앞서 들어간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겠습니다.”
루드거가 그렇게 말하며 먼저 발걸음을 뗐다.
일행들도 그 뒤를 따라 저택의 안으로 향했다.
저택의 안으로 들어간 루드거는 뒤를 돌아보았다.
일행들은 제대로 그를 따라왔다.
하지만 그 너머의 풍경은 전혀 달랐다.
“안개?”
저택 바깥에서 안쪽을 볼 때는 별문제 없었는데, 안에서 바깥을 보면 마치 스모그가 일어난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뭘 그리 놀라는 게냐?”
림레이가 그런 루드거의 모습을 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여기 처음 오는 것도 아니고.”
“처음 온 겁니다.”
“뭐야? 그러면 지금까지 안 오고 뭐 했어!”
“많이 바빴습니다.”
아주 바빴다. 매년 신분을 갈아 끼면서 살았으니까.
“바쁘면 못 오나?”
“바쁘니까 못 오지 않겠습니까.”
“에잉. 한 마디도 지려고 들지 않는구나.”
“그래서 왜 저런 상태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일 없다!”
그렇게 나오신다면야.
루드거는 아르파에게 눈짓했다.
그 신호를 받은 아르파는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할아버지. 왜 밖에 아무것도 안 보이나요? 저도 궁금해요!”
“뭐? 허어. 그래, 우리 아르파가 궁금하다면 대답해 줘야지.”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우리 아르파인가.
루드거는 묘하게 기분이 상했지만,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이 저택은 신비한 힘에 휩쓸려 있다. 그건 모두 들어서 알고 있겠지. 그리고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최소 인원이 정해져 있기도 하고.”
“예. 그렇죠.”
“네놈한테 한 이야기가 아니다!”
“…….”
말을 말자.
“보다시피 우리가 들어온 이후로, 우리를 따라 들어온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어? 정말 그렇네요?”
“그것이 이 저택의 힘이다. 바깥과의 소식이 차단되고, 입구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지. 최소 5명의 인원을 모을 필요가 있는 것은, 그 흩어지는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야.”
루드거는 그제야 이곳에 왜 5명 이상이 오는지 깨달았다.
그 이하로 저택에 들어간 사람들은, 다시는 바깥에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비밀의 저택이 아니라 공포의 저택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수준이었다.
“그럼, 저희는 괜찮은 건가요?”
“물론. 이곳에서는 지켜야 할 룰이 있단다. 그것만 잘 지킨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게야.”
규칙이라.
이쯤 되니 호기심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곳은 주기적으로 지형이 바뀐다. 그러니 때에 따라 원하는 곳을 갈 수도, 가지 못할 수도 있지. 지금 이렇게 왔다고 해서 안일하게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거다. 목적지를 정해야 해.”
“목적지야 정해진 거 아니겠습니까. 서재로 갈 겁니다.”
“흥. 다들 생각하는 것이 똑같군.”
“어르신도 서재로 가려던 거 아니었습니까?”
정곡을 찌르는 말에 림레이는 못 들은 척으로 응수했다.
“일단 걷죠.”
일행은 저택의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지도도 없고, 명패도 없으니 일일이 방을 다 확인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하게 돌아다녀야 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지 5분.
일행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저건…….”
루드거는 복도 한쪽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그의 주위는 새빨간 자국이 가득했다.
시체였다.
그것도 저택에 방금 들어온 마법사의 시체.
Komentar
Posting Komen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