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75화 비밀의 저택 (2)

 375화 비밀의 저택 (2)




“으음.”




“이, 이게 무슨.”




갑자기 나타난 시체에 일행들은 모두 당황했다.




루드거는 시체의 상태를 살피다가 저 먼 복도로 시선을 옮겼다.




“시체가 더 있군요.”




시체는 한 구가 아니었다.




길게 이어진 복도 여기저기에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체의 숫자는 총 열 구.




숫자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비밀의 저택에 들어온 팀이 분명했다.




“저택의 신비 현상에 휩쓸리기라도 한 건가?”




루드거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 셈파스가 입을 열었다.




“아니. 이런 경우는 들어 본 적이 없어.”




“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로이나마저 셈파스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저택에서도 신비 현상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보통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전부예요. 이렇게 시체가 남는 경우는 없어요.”




“그렇다면 여기 있는 시체는, 단순히 신비 현상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로군요.”




신비가 아니라면 무엇이 저 마법사들을 죽였을까.




그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살인.




이 비밀의 저택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신비 현상에 의한 결과라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곳이니, 처음으로 관측된 기현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의 모두가 이 사건이 살인 사건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어, 어쩌면 좋죠? 저택 안쪽에 살인마라니!”




“……6위계 마법사가 왜 겁을 집어먹는 겁니까.”




렉서러 등급이면 살인마 할아버지가 와도 그쪽이 겁을 먹었을 것이다.




호들갑을 떠는 로이나를 뒤로하고, 루드거는 시체에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뭘 하려는 거예요?”




“왜 이렇게 됐는지 원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 지금 부검하시려고요?”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만.”




무언가 단서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저택 안쪽에 위험한 녀석들이 섞여 있다면 그것만으로 불쾌한 일이니까.




‘피는 변색되지 않았어. 애초에 저택에 출입한 것이 조금 전이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는 거겠지.’




하지만 생각해 보니 웃긴 일이다.




저택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10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는단 말인가.




“계획 살인이군요.”




“계획이요?”




“다들 들어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보십시오.”




루드거는 다른 시체들을 가리켰다.




“전투의 흔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일방적으로 당한 거죠. 게다가 한 명이 한 짓이 아닙니다. 여럿이서 조직적으로 벌인 일이죠. 절대 우발적인 일이 아닙니다.”




단적으로 시체는 총 3개의 형태로 훼손되어 있었다.




날카로운 무수한 칼날에 베인 시체.




강렬한 열에 바짝 타 버린 시체.




그리고 상처 없이 피부가 거무죽죽하게 죽은, 거품을 물고 있는 시체.




“단순히 셋만 있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주된 살해 행위는 3명으로 좁혀지겠군요. 게다가 상당한 실력자입니다. 기습, 혹은 다른 비겁한 수를 썼다 해도 이들이 쪽도 못 쓰고 당했으니까요. 혹시 여기서 이런 일이 가능한 자가 추측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루드거의 시선이 셈파스와 로이나를 향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미친개인 셈파스와 사회성이 부족한 로이나는, 다른 마법사들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지 못했다.




루드거는 마지막으로 림레이를 응시했다.




“뭘 봐!”




“혹시 의심이 가는 사람 없습니까?”




“없어!”




림레이는 역정을 냈다.




“애초에 여기 안에 들어온 사람만 해도 200명이 넘는다. 그리고 대부분이 마법사지. 이런 일이 가능한 녀석이 누구냐고? 전부 다지!”




“전투 마법사 쪽으로 용의자를 좁히면 확연히 줄지 않겠습니까.”




“에잉! 이 멍청한 놈아! 생각해 봐라. 애초에 전투 마법사라고 모두 싸움을 할 줄 아는 게 아니야.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는 놈도 마법은 쓸 줄 알지. 그게 무슨 소리인 줄 아느냐?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림레이의 의견도 옳았다.




루드거는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한꺼번에 최대 인원인 20명을 모두 채운 팀은 아십니까?”




“그건 왜!”




“이 사람들. 같은 팀에게 배신당했습니다.”




그 말에 가만히 있던 셈파스와 로이나가 놀랐다.




의외로 림레이는 놀라거나, 혹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호통치지 않았다.




대신 조금 무거워진 눈빛으로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시체를 보십시오. 열 명입니다. 전부 마법사로 구성된 조합이,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한 겁니다. 당연히 정면 승부는 아니겠죠.”




“기습을 당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이 저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기습의 대응도 하지 않겠습니까. 신비 현상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이상, 다들 긴장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다른 팀을 만났다면 경계부터 하겠죠. 그럼에도 당했습니다. 정면 승부도, 기습도 아니라면 하나뿐입니다.”




바로, 같이 움직이던 동료들에게 당한 것이다.




“함께 들어온 일행이니 믿었던 거겠죠. 심지어 저택에 들어오기 전, 어쩌면 하루 전 인근 도시에서도 같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신뢰했고, 함께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자신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예상하지 못한 채로.”




루드거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렸다.




“이들은 총 20명. 즉 저택에 출입할 수 있는 최대 인원으로 왔을 겁니다. 그렇기에 정확히 절반이 갈린 거고요. 7명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끄는 동안, 나머지 3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처리한 겁니다. 그 3명이 이 모임에서 제일가는 실력자였을 테고요. 어떻습니까?”




림레이는 루드거가 자신을 향해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는 것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정중하게 굴어도 짜증을 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




림레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도 선생이라 그런지, 말 하나는 정말 조리 있게 잘하는구나.”




“더 조리 있게 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 드립니까?”




“에잉. 아주 노인네를 겁박하려 하는구나. 됐다.”




“그래서 현자님은 뭐 짐작 가는 거라고 있으십니까?”




“나라고 20명 모임을 다 신경 쓰겠느냐. 애초에 그런 건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건 아쉽군요.”




“대신에.”




림레이는 그렇게 운을 떼며 손에 든 석장 지팡이의 끝으로 시체 하나를 툭 가리켰다.




지팡이의 끝이 시체의 품 안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 시체의 주인은 누구인지 알겠구나.”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는데요.”




시체는 칼날 같은 것에 자상을 입은 형태였다.




노린 건지는 모르겠는데, 얼굴도 난도질해 놔서 누구의 시체인지도 구별이 되지 않았다.




“얼굴 없는 시체라도 말을 해 주는 법이지. 이 품 안에 있는 은빛 목걸이가 보이느냐?”




“예.”




“이건 증표다. 델리카 왕국의 종군 마법사가 사용하는 군번줄 같은 거지. 그런데 보통 이런 물건은 일반 병사가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나름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얻을 수 있는 거지.”




“그렇다면 이 시체가 설마…….”




“그래. 내가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 녀석은 누구인지 기억한다.”




“벨카트 벤마르크.”




루드거도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었다.




아르파가 눈여겨볼 사람이라며 알려 주었던 마법사 중 하나였으니까.




게다가 그는 여러 사망자를 냈던 3마리의 체셔 타이거 중 한 마리를 제압했던 마법사이기도 했다.




금속과 전격의 마법사.




로이나가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정도의 사람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뭘 그렇게 놀라는 게냐. 세상일이 다 그런 거지.”




림레이는 고위 마법사가 죽었음에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다.




“실전에서는 위계 따윈 중요하지 않아. 전설의 대마법사가 아닌 이상, 6위계 마법사조차 불의의 기습에 죽는 것이 현실이다.”




“…….”




로이나는 그 말에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림레이가 말하던 그 상황을, 그녀도 얼마 전에 겪지 않았던가.




‘맞아. 나도 그랬지.’




수도에서 밀려들어 오던 키메라 군단.




로이나는 많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실시간으로 방대한 마나를 소모했고, 결국 버티지 못하고 죽을 위기에 처했었다.




로이나가 남을 신경 쓰지 않고 혼자만을 위해 싸웠더라면 그런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하나.




실전에서는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물며 기습으로 이렇게 했으면, 뛰어난 종군 마법사도 이렇게 허무하게 가는 거야. 어쩌면 그만큼 살인자의 실력도 뛰어난 걸 수도 있고.”




“그, 그러면 이제 어쩌죠? 이 저택에 살인자들이 돌아다니는 거잖아요. 무려 10명이나!”




“그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는 이상, 다른 팀과의 접촉은 최대한 피해야겠지.”




“일단 알려야 하지 않나요?”




“알릴 수 있다면, 말이지.”




림레이는 말을 모호하게 흘렸다.




로이나는 왜 그러냐고 물으려 했지만, 뒤늦게 벌어진 사태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시체가…….”




조금 전까지 있던 시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심지어 바닥의 카펫과 벽에 새겨진 핏자국도 마찬가지였다.




“저택의 룰…….”




“복도에서는 일정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말을 대신 이어받은 것은 셈파스였다.




“사소한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5분이 지난다면, 저택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지. 바로 지금처럼.”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5분 동안 자리에 못 박힌 듯 가만히 서 있을 일은 없다.




하지만 시체는 달랐다.




시체는 숨도 쉬지 않으며 움직이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저택의 신비는, 5분이 지난 지금 시체를 가볍게 지워 버렸다.




“이걸 노렸군.”




루드거는 사라진 시체의 자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들어가자마자 왜 일을 벌였나 했더니, 저택에 존재하는 룰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그래야 다른 목격자가 없을 테니까.




그야말로 완벽한 증거 인멸이다.




“아르파. 흔적은?”




루드거는 아르파에게 물었다.




시체가 사라진 것이 바로 조금 전이다.




조금 전부터 시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아르파라면, 무언가를 봤을지도 모른다.




“없어요. 정말 감쪽같아요.”




하지만 특수 오토마톤인 아르파조차도, 저택의 신비를 꿰뚫지 못했다.




그 날카로운 눈동자는 저택이 지닌 기묘한 힘의 편린에 패배했다.




“그야말로 귀신 들린 집이로군.”




“무, 무서운 소리 하지 마세요! 루드거 씨!”




“……6위계 마법사가 대체 왜 귀신을 무서워합니까.”




기초 강령술만 써도 어지간한 혼령 따윈 쉽게 쫓아낼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이제 어쩔 거지?”




림레이는 루드거에게 물었다.




자연스럽게 루드거를 일행의 리더로 대하는 태도였지만, 루드거는 그것이 존경의 의미가 아닌 귀찮은 일을 떠넘기기 위해서라는 걸 아주 잘 알았다.




“계속 움직입니다. 어차피 저희의 목적은 이게 아니었으니까요.”




“루, 루드거 씨. 그렇지만 시체라고요! 시체! 이 저택에 살인마가 있어요!”




“예. 있죠. 무려 10명이나. 하지만 그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시체는 사라졌고, 목격자는 없죠.”




“저희가 증언을 하면……!”




“증거가 없는 증언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게다가 마법사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안에서 10명이 죽었다? 오히려 감사하겠죠. 경쟁자가 줄었으니.”




“그, 그런…….”




“나는 루드거 첼리시의 말에 동의한다.”




좋은 타이밍에 셈파스가 루드거에게 도움을 줬다.




“살인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아직 모른다. 어쩌면 지금 죽은 10명과 과거에 좋지 않은 일이 있던 걸지도 모르지.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우리가 시끄럽게 군다면, 놈들은 목표를 우리로 바꿀 거다. 물론 나는 싸움을 걸어온다면 피하지 않겠다만.”




다른 일행들은 그러지 않겠지.




셈파스는 굳이 그 뒷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증거는 없다.




시체도 사라졌다.




있는 거라고는 시체를 본 다섯 사람의 증언뿐.




물론 그 5명이 전부 다 한가락하는 실력자들이니, 그 주장의 무게는 만만치 않겠지만.




과연 다른 마법사들이 신경이나 쓸까?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짓이 될 것이다.




“무시하고 넘어간다. 이것이 제 선택입니다.”




루드거의 말에 림레이와 셈파스, 아르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나만이 사람이 죽은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거부의 말은 내비치지 않았다.




“슬슬 움직입시다. 오래 머무르면 괜히 힘들어질 테니까요.”




일행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만, 조금 전과는 분위기가 약간이지만 달랐다.




시체를 보았으니 조금은 긴장감이 생긴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망자와 10명의 살인자라.’




루드거는 죽은 사람과, 죽인 사람들의 관계를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이 우발적으로 벌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퍼스트 오더 레슬리는 이번 신비의 밤에서 모종의 일을 꾸민다고 했었지. 그리고 저택에서 살인이 벌어졌다. 그것이 과연 우연일까?’




그럴 리가.




이 비밀이 많은 저택에, 지금 레슬리를 비롯한 검은 여명회의 잔당들이 숨어 있다.




숫자는 10명.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10명이 아닌 집단을 마주친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루드거는 복도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발견했다.




그것을 발견한 것은 단지 우연이었다.




본인도 모르게 지나치려 했다가, 액자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발걸음을 멈춘 것이다.




“이 그림은…….”




“그림?”




루드거의 중얼거림에 반응한 것은 림레이였다.




“자네. 그걸 발견한 거로군.”




“그게 뭡니까.”




“투명 액자. 이 저택에 있는 현상 중 하나지. 특정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액자라고 하더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게 보이지 않는 겁니까?”




루드거의 물음에 다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그 아르파마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 액자의 특징이 뭐랍니까?”




“안에 그림이 있지?”




“예. 인물의 초상화로군요.”




“그렇다면 투명 액자가 맞군. 그 투명 액자는 사람의 인물화로 나타나지. 그리고 그 인물화가 나타내는 사람은, 머지않아 죽고 말아.”




“죽는다고요?”




루드거는 림레이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다만 지금까지 그런 말이 나돌았을 뿐. 굴뚝에 연기가 괜히 나겠나. 땔감을 태우니 나겠지. 적어도 나는 진짜라 생각하네.”




“……그렇군요.”




루드거는 다시금 액자를 바라봤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액자의 그림.




거기에는 림레이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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