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78화 책 고르기 (2)

 ◈ 378화 책 고르기 (2)




“네가 더 줄인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림레이가 수염을 바르르 떨었다.




말은 궁금해하는 것 같지만, 림레이는 루드거가 어떠한 의도로 저 말을 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물어보는 것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아시지 않습니까.”




“내 [책 고르기] 마법을 손보라고?”




림레이의 표정이 무섭게 구겨졌다.




해당 마법의 창시자에게 그 마법을 지적하는 것은 엄청난 무례로 꼽힌다.




“그러니 네놈 말은, 지금 내 마법이 아직 미숙하니 개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이렷다?”




“그렇게도 들릴 수 있겠군요. 하지만 제가 한 말은 그게 아닙니다.”




“뭐라? 그렇다면 무슨 의미로 꺼낸 말이냐.”




“줄이는 것은 제가 할 겁니다. 그러니 현자님은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




오히려 이쯤 되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림레이는 이제 화를 낼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는 없었다.




“네놈은 내 [책 고르기] 마법을 조금 전에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네가 사용하겠다고? 거기에 더해서 추가로 손을 보면서? 내 마법을 멋대로 개조하겠다는 말과 뭐가 다르지?”




“개조는 아닙니다. 오히려 현자님이 사용하셨던 것을 따라 하되, 제 방식대로 조금 손을 보는 것뿐이죠.”




“그게 개조가 아니면 뭔데!”




“제 방식대로 흉내를 내는 것일 뿐입니다. 설마 그것마저 못하게 막으실 생각이십니까?”




“흉내를 내? 웃기는 말을 하는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소리인 줄 알아?”




[책 고르기]는 림레이가 탐지 마법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개량해서 만들어 낸 마법이다.




그 작동 원리와 진행 과정, 그리고 결과물을 나타내는 그 모든 것은 탐지 마법과는 결이 매우 달랐다.




그것을 고작 한 번 보고 따라 하겠다니.




어지간히 간이 크지 않고서야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루드거가 대단한 마법사라는 걸 인정하는 로이나조차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루드거는 자신이 꺼낸 말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는 듯, 손에 한 권의 책을 쥐며 말했다.




“현자님이 사용하신 탐지 마법은 책 안에 적힌 글자에 반응하도록 변형을 가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거야 봐도 알지 않느냐. 중요한 건 그 방법이다. 탐지는 말 그대로 물건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려 주지 책에 적힌 내용물까지는 구분할 수 없어.”




“맞습니다. 그래서 마력 패턴에 변형을 줘서, 특정 색상에만 마력이 반응하도록 만든 거 아닙니까. 책은 결국 흰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 더 진한 색에 마력이 반응하면, 그것만으로 글자를 분석할 수 있겠죠.”




물론, 말처럼 쉬운 방법은 아니다.




덮인 책의 페이지 사이사이에 마력을 흘려 넣어야 가능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세심한 마력 컨트롤이 필요했다.




하지만 루드거는 책 한쪽 페이지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 뒤, 그 위에 얇고 넓은 마력을 흩뿌렸다.




마력은 책 위의 잉크로 적은 글씨에 반응해 꿈틀거렸다.




루드거가 실제로 해낸 것을 본 림레이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 그걸 할 수 있다고 치자. 물론 그것도 대단하지만, 내 [책 고르기] 마법은 고작 그 과정 하나만 끝냈다고 해서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건 특정 글자에만 마력이 반응하게 하는 거겠죠.”




“…….”




“단어의 형태마다 마력의 반응이 달라지니, 이 부분은 특정 단어에 반응하는 마력 패턴을 기억하고, 그것만 눈여겨보면 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탐지 마법을 이중으로 깔아야겠죠.”




림레이는 이번만큼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탐지 마법을 이중으로 사용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처음에는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실행해 보니, 한 번으로는 부족하더군요. 1차로 특정 단어의 패턴을 드러내고, 2차로 탐지를 재차 사용해 그 패턴에 [신호]를 일으키는 구조가 아닙니까.”




즉, 림레이가 사용한 [책 고르기] 마법은 무려 탐지를 이중으로 겹쳐서 사용한 마법이었던 것이다.




루드거는 그것을 보고 단번에 깨달은 거고.




이런 일은 림레이도 처음 겪어 본 것인지라, 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온갖 감정이 뒤섞여 엉망진창이었다.




애써 이성을 유지하려고 하면서도 어이가 없음을 숨기지 못했고, 화가 나면서도 루드거를 향한 경탄까지 느껴졌다.




림레이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 이쪽이 사용한 마법의 밑천을 대체 어디까지 터는지, 한번 지켜나 보자.




“그래서. 그다음은?”




“이중 탐지를 통해 신호를 보내셨으니, 아마 여기서 일정 횟수의 패턴은 적색으로 표시하고, 횟수 이상은 청색으로 표시했을 겁니다.”




“그렇지. 그게 그나마 구분하기 확실한 방법이니까.”




“횟수로 정한 것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특정 단어를 몇 개 더 추가한다면, 더욱 변별력이 생길 겁니다. 「마법」과 「신비」, 이 2개에 더해서 「기적」, 「은총」, 「선택받은」 등. 이런 단어가 전부 다 들어가면, 더 확실하게 찾을 수 있죠.”




“그 단어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게냐?”




“옛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축복을 받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노력에 의한 대가가 아닌, 태생적으로 은혜를 받았고 재능이 있으며 선택을 받았다 여겼죠. 그것은 당연히 그들의 기록에도 묻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루드거는 손가락의 끝에 마력을 일으킨 뒤, 그것을 실타래처럼 길게 뽑아 책장에 꽂힌 책을 향해 쏘아 보냈다.




책에 닿은 마력은 그대로 책 전체를 빠르게 스캔하고, 거기에 적힌 무수한 단어들을 여러 패턴으로 나타냈다.




루드거는 거기서 특정 패턴만 분석한 뒤 2차 가공을 가했다.




그러자 마력이 책과 반응하여 반짝이며 발광했다.




“당첨이로군요.”




루드거는 연결된 실을 통해 책을 스캔하던 마력을 그대로 회수했다.




믿기지 않는 마나 장악력이었다.




“이렇게 하면, 전보다 훨씬 더 변별력 있게 원하는 책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자님처럼 한꺼번에 대량의 책을 찾을 수는 없지만, 현자님이 한번 분류한 것을 추가로 분류하는 것은 가능하죠. 전부 현자님 덕분입니다.”




루드거는 림레이의 체면을 생각해 그를 한차례 띄워 주었다.




자신의 마법은 림레이의 도움이 없다면 효율이 좋지 않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하지만 림레이는 루드거의 그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사실상 이쪽이 생선의 뼈를 발라 놓으면 루드거가 날름 먹어 치운다는 게 아닌가?




그건 림레이에게 있어서 정말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루드거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루드거는 [책 고르기]를 흉내 내는 것을 넘어, 자신의 방식으로 개량까지 했다.




더 효율적이고 더 깔끔하다.




게다가 루드거는 이쪽이 사용한 마법의 작동 원리를 한 번 본 것만으로 꿰뚫었다.




[책 고르기]가 림레이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이이…….”




림레이는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그래, 너 잘났다 이놈아!”




어린아이처럼 화를 내는 행동이었지만, 그 기저에는 루드거를 향한 인정이 깔려 있었다.




사실상 항복 선언인 셈이었다.




물론 고집을 부린다면 트집을 잡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림레이는 그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애초에 루드거가 보여 준 모습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그것을 강제로 끌어 올릴 정도였다.




“마법 참 더럽게 쓰네!”




“칭찬 감사합니다.”




“이게 칭찬이야? 어?! 칭찬인 줄 아냐고!”




“6위계 마법사가 하시는 말씀인데, 어떻게 칭찬이 아니겠습니까. 거의 극찬이죠.”




와.




로이나는 루드거의 저 뻔뻔하기까지 한 면모에 자기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며 감탄했다.




자연스러운 인성질까지 완벽했다.




정작 본인은 그럴 의도가 없으니, 그렇기에 더 빛났다.




“이제 시작하도록 하죠. 아직 저택을 나갈 때까지 여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시간은 금이니까요.”




림레이가 [책 고르기] 마법으로 책들을 1차로 걸러 내면, 거기서 루드거가 2차로 걸러 낸다.




그렇게 하니 살펴야 할 서적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 책들은 아르파와 셈파스, 로이나가 챙겨서 사재의 한쪽에 가지런히 쌓았다.




서재 전체를 한 바퀴 빙 돌고 나서야 작업은 끝났다.




“몇 권입니까?”




“총 132권이에요.”




“그래도 많군요.”




수만 권 사이에서 100여 권으로 추려 낸 것도 대단하지만, 그렇다 해도 132권은 너무 많았다.




게다가 여기서부터는 이제 루드거 혼자서 살펴야 했다.




물론, 로이나와 셈파스, 림레이도 자체적으로 해석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루드거가 아케인 체임버에서 발표한 자료 덕분에 로이나의 작업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는 점이다.




‘이건 꽝이군.’




현대 마법 이론의 기초가 되는 자료를 옆으로 치운 루드거가 책에 고개를 처박은 로이나를 보며 물었다.




“로이나 씨는 괜찮습니까?”




“……네? 저 불렀어요?”




“예. 불렀습니다.”




“왜, 왜요?”




“저희끼리 이렇게 왔다지만, 로이나 씨는 본래 소속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와도 괜찮냐는 겁니다.”




로이나는 그 말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연합회 할아버지들이 억지로 저한테 붙인 사람들이에요.”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던 겁니까?”




“학파 연합회는 하나의 조직처럼 보이지만, 세부적으로는 무수히 분파가 갈려요. 그리고 저를 따라온 사람들은 다 저와 다른 분파고요.”




“로이나 씨를 돕는 척하면서, 은근하게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었군요.”




“네.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따로 있는 게 훨씬 더 마음 편해요. 물론 돌아가면 뭐라고 한 소리 듣겠지만, 그 정도는 그냥 참고 넘길 수 있어요.”




그랬군.




루드거는 로이나에 대한 걱정을 접으며 다시 책을 살피는 데 집중했다.




일단 눈여겨볼 만한 것들은 따로 분류해 두고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아직 이쪽의 마음에 차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쌓여 있는 책은 많았기에 루드거는 다음 책을 집어 들었다.




‘이건?’




이번 책은 마법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마법에 관한 서적은 맞지만, 그 이상으로 다른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바로, 악마와의 성전에 관한 이야기였다.




‘악마라…….’




당장 필요한 자료는 아니었지만, 호기심이 동했기에 루드거는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세간에 알려진 악마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군. 그리고 오래전부터 종교는 그런 악마들과 싸워 왔다고 말이야.’




하지만 이런 내용이 나온다면, 이야기는 으레 종교가 선(善)이라는 쪽으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여기서는 오히려 루멘시스 교단을 비판하고 있었다.




‘당대 루멘시스 교단은 파면권까지 지닌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런데도 교단을 비판하는 내용을 작성하다니.’




루드거는 의아해하면서도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악마는 저마다의 권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됐는지는 중요치 않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힘은 그 자체만으로 악마의 한 개체가 거대한 군단과 싸울 힘을 선사해 주었으니까. 루멘시스 교단은 그런 악마의 흔적을 오랫동안 찾아 헤매며 그들과 싸워 왔다. 하지만 그것은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했을 뿐이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싸움은 오래전, 과거의 성녀가 이끄는 수백의 성기사단과 대악마 수르나의 일전이었다. 2개가 넘는 소규모 국가를 멸망시킨 대악마는 수르나는 성녀 아르케니스의 희생 끝에 상멸(相滅)하고 만다. 그 이후로, 구심점을 잃은 악마들은 오랫동안 세상의 그림자에 숨어들었다.]




‘구심점이라고?’




헬리아와 했던 말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악마, 그러니까 스스로 사도라 부르는 존재들은 서로 동료 의식 따위는 지니지 않는다.




그런데 이 서적에는 대악마 수르나를 구심점이라 표현했다.




기록이 잘못된 건가. 아니면 헬리아가 일부 진실을 숨긴 건가.




루드거는 곧바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대악마의 사후, 루멘시스는 점차 거만해졌고, 폭정을 일삼았다.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했으며, 신을 향한 신앙의 증거라며 재물을 빼앗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각국의 왕자와 왕녀를 볼모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루멘시스 교단에 저항하지 못했다. 물리적인 힘이 아닌, 그들에게는 신의 권능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의지를 멋대로 쥐락펴락하는 끔찍한 권능이.]




페이지를 넘기려던 루드거의 손이 흠칫 떨렸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이 서적은 절대로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루드거는 책의 앞뒷면과 머리말을 유심히 살폈다.




저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서 뭘 했는지 전혀 기록하지 않았다.




어쩌면 일부러 남기지 않은 걸 수도 있었다.




‘가령, 자신의 정체가 들키면 안 된다거나.’




[그 권능은 주신 루멘시스로부터 온 것이다. 일부 위정자들은 신을 믿지 않았지만, 나는 안다. 신은 존재하며, 그는 우리를 억압하려 든다는 것을. 루멘시스 교단은 그걸 위한 수단이자 꼭두각시였다. 그러니 이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우린 언제까지고 억압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방법을 찾았다. 이 모든 걸 끝낼, 귀중한 물건을 구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엘프들과 손을 잡았다.]




[우리는 거대한 시설을 만들어, 그 아래에서 몰래 세계수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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