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81화 숨겨진 공간 (1)

 ◈ 381화 숨겨진 공간 (1)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멋대로 자리를 비우는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안 그래도 다들 예민하고 날카로워진 상태인데, 여기서 따로 움직인다?




그랬다간 이쪽이 범인이라고 자백하는 꼴이었다.




“더 이상은 못 참겠네!”




루드거 일행이 움직이려는 순간, 한쪽에서 분노 가득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누구인가 싶어서 보니,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진리학파 마법사들이 보였다.




“우리는 따로 움직이겠어!”




수염을 기른 꼬장꼬장한 노인이 그렇게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독단 행동의 선언에 한 중년 마법사가 나서며 말했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이런 상황에서 흩어지면 더 위험한 거 모릅니까?”




“그게 아니면 뭐. 언제 나가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여기에 꼼짝도 없이 가만히 있으라고?”




“다들 머리를 맞대어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이 열리지 않지만, 탈출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 자리의 마법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진리학파가 따로 개인 행동을 하겠다고 말했으니, 말리는 것이 당연했다.




지식은 나눌수록 더욱 빛을 보니까.




그러나 진리학파의 마법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왜?”




“예? 지금 그게 무슨…….”




“우리가 왜 너희와 머리를 맞대야 하냐는 거야. 머리를 맞대는 것도 수준과 급이 맞아야 가능한 일인 것을.”




“…….”




중년 마법사의 얼굴이 굳어 버렸다.




진리학파 마법사의 말은, 그를 비롯해 이 자리의 다른 마법사들을 모욕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것 아닙니까.”




“왜. 우리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




“아무리 선배님들이라 해도 듣고 넘길 수 없는 말도 있는 법입니다.”




진리학파가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서 똑똑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공석에서 대놓고 꺼내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멀리서 저 광경을 지켜보던 림레이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에잉. 쯧쯧. 나이를 헛먹은 노인네들 같으니라고. 지식이 있으면 뭘 하나. 지혜가 있어야지.”




“…….”




“뭐야? 왜 나를 그런 시선으로 보는 거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루드거는 림레이로부터 시선을 돌려, 여전히 짜증을 내는 진리학파를 바라봤다.




상대도 진리학파의 언행에 발끈해서인지 서로의 언행이 점점 높아졌다.




이대로 가면 당장이라도 지팡이를 뽑아 서로 싸우게 생겼다.




모두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루드거는 진리학파 마법사들을 꼼꼼히 살폈다.




‘저 모임의 숫자는 총 20명. 저택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최대 인원이로군.’




같이 온 전투 마법사들은 저택 바깥에서 대기하는 중인가?




그렇다면 살인자 집단과는 관련이 없을 것이다.




살인자들은 많아도 10명이고, 일부가 이미 저택을 빠져나간 걸 감안하면 5명이 한계일 테니까.




진리학파는 검은 여명회와 크게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렇게 따로 움직이려고 하는 것은 특유의 오만함 때문이겠지.




‘차라리 잘됐군. 이 자리에서 두런두런 모여 앉아 탈출 방법이나 모색할 바에는 서로 찢어지는 것이 나아.’




그렇지 않아도 서고로 다시 돌아갈 방법을 찾던 중이었다.




타이밍 좋게도 진리학파가 알아서 명분을 만들어 줬으니, 그 흐름에 탑승하기만 하면 됐다.




루드거의 예측대로 진리학파 마법사들은 따로 움직이겠다고 홀을 떠나 버렸다.




누구도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저 제멋대로인 자들을 붙잡을 바에야 자기들끼리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더 나았으니까.




하지만 진리학파의 행동은 생존자들의 무리에 금이 가게 만들기 충분했다.




“우리도 따로 움직이지.”




“우리도.”




“어차피 너무 많이 모이면 그거대로 힘들어.”




눈치를 보던 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다들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아르파의 말에 루드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마법사들이 대부분 저렇다.




서로 힘을 합쳐 활동하는 자들은 극히 적다.




특히 지금처럼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루드거는 홀을 빠져나가는 마법사들을 유심히 살피며 입을 열었다.




“우리도 움직이도록 하죠.”




전부 찢어져 흩어지는 상황에서 그 말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행은 다시금 홀을 벗어나 복도를 거닐었다.




당연하게도 이번에 앞장서서 걷는 사람은 아르파였다.




“우리, 잘 찾아가는 거 맞죠?”




로이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목소리에는 여전히 걱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혹시 길을 잃는다거나…….”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르파는 서고의 위치를 찾을 줄 압니다.”




“그렇지만 저택의 신비는…….”




“신비라 해서 만능은 아닙니다. 그 흐름과 패턴을 분석할 줄 안다면, 그것은 반대로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되죠.”




오래전 이 저택에 방문했던 자들은 말했다.




자신들의 기록을 지키기 위해 저택의 기능을 일부 다루었다고.




저택의 신비를 이용했다는 대목에서, 이 저택에 존재하는 일부 규칙은 그들이 만들었음이 분명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끔찍한 독이라도 상황에 맞춰서 쓰면 약이 될 수 있듯, 저택의 신비 또한 다룰 수 있다면 반전을 꾀할 수 있다.




미지로 가득한 신비라 하더라도 그 원리나 사용법을 알아차린다면 대응하기 쉽다.




과거 인류가, 마나라는 미지의 힘을 마법으로 발현시킬 수 있던 것처럼.




“여기예요!”




아르파는 그렇게 말하며 문을 활짝 열었다.




“제대로 도착했군.”




“서고를 이렇게 쉽게…….”




로이나는 다시금 서고를 쉽게 찾아낸 아르파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미 한 번 해냈다 해도, 그걸 연속으로 해내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




저택 내부의 방이 움직이는 패턴을 분석했다는 말을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확실해졌다.




아르파는 정말로 서재의 위치를 분석할 영민한 두뇌를 지니고 있다는 걸.




‘이게 말이 돼? 저건 단순히 머리가 좋다고 해서 되는 수준이 아니잖아.’




처음 아르파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준 것은 체셔 타이거의 습격 때였다.




그때 아르파는 어마어마한 힘을 선보이며 체셔 타이거를 쓰러뜨렸다.




저 또래 아이 중 그런 것이 가능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것만으로도 아르파는, 자라기만 한다면 엄청난 인재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한 번 본 것을 전부 기억하기까지 하다니.




‘사람 맞아?’




로이나는 그것을 묻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그러지 못했다.




그것은 셈파스와 림레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서고 내부를 둘러본 루드거는, 말끔하게 정리된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나오기 전에 쌓아 둔 책들은 모조리 정리됐군요.”




“그래. 물건을 가지고 나가는 것조차 안 되고, 이전에 어지럽혔던 것도 한 번 나갔다 오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루드거는 책장을 슬쩍 살폈다.




심지어 책장에 꽂힌 책의 위치도 전부 뒤바뀌어 있었다.




‘그 많은 책을 다시 뒤져야 하는 건 벌써부터 막막한 일이지만, 다행히도 이쪽에는 책을 찾을 수 있는 베테랑이 있지.’




루드거는 림레이에게 책을 찾아 달라고 말하려다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는 본래의 계획과는 다른 제안을 꺼냈다.




“우선 다들 흩어져서 각자 책을 찾아보도록 하죠.”




“뭐냐. 따로 하자고?”




림레이도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그렇게 물었다.




“어차피 책을 찾는 방법은 다 알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흩어져서 찾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지금처럼 시간이 촉박할 때라면 더욱 그렇고요.”




“……그래. 그렇다 해도 나는 내 [책 고르기] 마법을 가르쳐 줄 생각은 없다.”




“제가 개량한 것을 알려 주면 됩니다. 그리고, 굳이 알려 줄 필요 없이 여기 있는 로이나 씨는 이미 사용법을 터득한 모양이지만요.”




그 말에 림레이의 부리부리한 눈매가 로이나를 향했다.




히익!




로이나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루드거의 말을 부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 이 아이도 렉서러 등급이니 그럴 만하지.”




“셈파스는, 제가 알려 주도록 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하거라.”




림레이는 퉁명하게 답하고는 책장의 너머로 사라졌다.




루드거는 셈파스에게 마법 술식을 가르쳐 주었다.




“따라 하기는 어렵지 않을 거다. 림레이 님의 [책 고르기]와 비교하면 조촐하지만, 무턱대고 책을 찾아보는 것보다는 낫겠지.”




“……묘한 기분이군. 이렇게 직접적으로 마법을 전수받게 될 줄이야. 알아낸 마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긴박한 상황이니까.”




“…….”




긴박한 상황이라 해서 자신이 깨달은 마법을 가르쳐 주는 마법사는 없다.




하지만 셈파스는 토를 달지 않았다.




이 남자에겐 상식적인 반응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걸, 이미 깨달아 버린 것이다.




림레이의 마법을 눈으로 보고 자신의 방식대로 따라 하는 마법을 즉석에서 만드는 사람 아닌가.




이 정도의 능력이라면, 이 책을 찾는 탐색 마법을 ‘따위’로 취급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가르쳐 줘서 고맙군. 열심히 찾아보겠다.”




“저, 저도 찾아볼게요.”




그렇게 셈파스와 로이나도 자신이 찾아야 할 구역으로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루드거와 아르파 단둘뿐.




그때 가만히 있던 아르파가 루드거를 불렀다.




“리더.”




“왜 그러지?”




“아뇨. 조금 전에, 묘하게 태도를 바꾸신 것 같아서요. 원래 림레이 할아버지에게 뭔가를 말하려던 것 아니었나요?”




“바로 직전까지는 그랬다.”




“네? 그런데 왜…….”




“아르파. 우리가 홀을 벗어나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의 뒤를 쫓아온 사람이 있었나?”




아르파는 잠시 생각해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없었어요.”




“역시.”




루드거의 묘한 태도에 아르파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루드거는 당장 아르파의 궁금증을 풀어 줄 수가 없었다.




그에겐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렇겠지?’




루드거는 자신의 뒤에 선 ‘남성’을 바라보며 속으로 물었다.




창백한 인상, 흐릿하고 초점이 없는 눈.




그리고 반투명한 몸까지.




이 서고에 들어오자마자 마주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르파는 루드거의 눈앞에 있는 이 남자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로이나도 림레이도, 셈파스도 마찬가지였다.




이 남자는 오직 루드거의 눈에만 보이는 사람이었다.




저택의 신비 중 하나인 투명 액자처럼 말이다.




‘복식을 보면 아주 오랜 옛날 학자 같은데.’




유령인지 모를 이 남자가 왜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났느냐.




루드거는 그 이유를 서재에서 읽었던 책에서 찾았다.




‘너였군. 500년 전, 이 신비의 땅에 숨어들어와 저택에 머물렀던 사람이.’




그렇게 물었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드거는 그가 자신이 읽었던 책의 저자라는 것을 직감했다.




신비 현상을 보며 유령 저택 같다고 생각은 했는데, 정말로 유령이 있을 줄이야.




그는 왜 자신의 앞에 나타났는가.




그리고 대체 무엇을 원하는가.




루드거는 가만히 서서 남자를 응시했다.




스윽.




남자는 힘없이 손을 들어 올려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무언가가 있는 건가?




루드거는 그 손길을 따라 걸었다.




루드거가 가리키는 방향에 도착하자, 남자는 그곳에 신기루처럼 나타나 다시 새로운 방향을 점지해 주었다.




마치 이곳으로 가야 한다고 안내해 주는 것처럼.




그것이 함정일지, 아니면 정말로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지.




루드거는 그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어느덧 서재의 끝에 도착하자 남자는 책장 안쪽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여기인가?’




루드거는 남자가 사라진 책장에 다가가 책들을 꼼꼼히 살폈다.




이곳까지 불렀다는 것은, 여기 어딘가에 숨겨진 장소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 행동은 정답이었다.




‘여기군.’




책장의 틈새에서, 미약하지만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피지 않았더라면 알기 힘들 정도로 희미한 흐름이었다.




루드거는 흐름의 결을 따라 근처에 놓인 책들을 만져 보다가, 이질적인 감촉을 지닌 책 한 권을 찾아냈다.




이거로군.




겉모습을 흉내를 낸 가짜 책을 가볍게 툭 당기자, 책장이 옆으로 스르륵 밀려났다.




안쪽에 숨겨진 비밀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이걸 대체 어떻게 찾았어요?”




아르파가 놀라서 물었지만 루드거도 마땅히 해 줄 수 있는 대답은 없었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이 알려 줬다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루드거가 숨겨진 공간 안으로 들어가자 아르파도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리더. 다른 사람들에게는…….”




“쉿.”




루드거가 그렇게 말하자 아르파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눈치가 없는 아르파라도, 루드거가 다른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숨기려는 행동에서 무언가를 느낀 것이다.




숨겨진 공간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저 업무용 책상과, 다른 잡다한 물건만 놓인 자그마한 집무실 크기일 뿐.




저택의 여타 장소와 다르게 정리가 되지 않은 것이 특징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오랫동안 쌓인 먼지 때문에 안쪽의 공기는 퀴퀴하기 짝이 없었다.




루드거는 집무실 책상의 앞에 앉아있는 해골을 보았다.




그 해골의 곁에는 유령이 가만히 서 있었다.




“이건. 너로군.”




그 말에 유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루드거는 말없이 뼈만 남은 시체에 다가갔다.




책상의 위에는 책 몇 권이 놓여 있었다.




숨겨진 공간에 있는 책.




그것의 중요도가, 과연 얼마나 높을지는 읽어 봐야 알겠지.




그렇게 책에 손을 뻗으려던 루드거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책에, 먼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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