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85화 정면 돌파 (1)

 ◈ 385화 정면 돌파 (1)




“정면에서 뚫고 나가겠다고? 혹시 지금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거냐?”




림레이는 자신이 뭘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루드거가 갑자기 정면 돌파를 하자고 말할 리가 없었으니까.




더 따지려던 림레이는 루드거의 표정을 보는 순간 설득을 포기했다.




“……네 녀석, 진심이구나.”




루드거는 조금 전에 한 말을 단순히 막 지른 것이 아니었다.




“방법은 있는 거냐?”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를 쫓아오던 그림자 기사들. 지금 우리가 도망치는 방향에는 보이지 않더군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생존자들이 머무는 장소에 무작위로 나타날 텐데 말입니다.”




“듣고 보니 그렇구나.”




“아마 녀석들은 소환되는 위치가 정해져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택에 퍼져 나가며, 침입자들을 제거하는 거겠죠.”




“그러니 놈들이 온 곳을 역으로 뚫고 가면 시스템의 근원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거냐?”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최소한 놈들을 소환하는 곳은 알 수 있겠죠.”




그건 단순히 추측이지 않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동시에 루드거의 추론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이대로 다시 돌아가 그 그림자 괴물들을 돌파하기라도 하자는 거냐?”




“예.”




“확실치도 않은 일에 목숨을 걸자고? 여기 있는 모두가?”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저택에는 룰이…….”




“이제는 혼자 움직여도 상관없습니다.”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사무엘을 가리켰다.




“사무엘이 그림자 기사로부터 습격을 당하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도망칠 때, 그는 혼자였습니다. 기억 안 나십니까?”




“그건…….”




“그림자 기사들이 나타나기 전 저택이 전체적으로 크게 떨렸죠. 아마 저택의 시스템이 가동하면서 일어난 일일 겁니다. 반대로 지금까지 적용된 저택의 ‘룰’이 작동하지 않게 된 것도 그 때문이겠죠.”




그러니 이제부터는 이 비밀의 저택에서 ‘개별 행동’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굳이 따라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마법사들과 합류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누가 뭐래도 가 봐야겠습니다.”




“이런 미친놈.”




“현자님은 빠지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은 제 독단적인 행동.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다, 이놈아! 그런 식으로 살살 긁으면, 내가 뭐 감정에 못 이겨서 움직일 줄 아느냐?”




림레이는 정말로 같이 움직이지 않겠다며 뒤로 물러났다.




루드거는 그런 림레이를 탓하지 않았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실망이니 뭐니 할 것도 없었다.




다만, 로이나와 셈파스는 달랐다.




“저, 저도 같이 가요!”




“나도 가겠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루드거가 정말이냐는 시선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치, 친구가 간다는데, 제가 따로 빠질 수도 없는걸요.”




“여기까지 와서 도망치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 더군다나 그쪽의 계획이라는 것이 궁금하기도 하고.”




목숨을 걸어야 할 일에 임하는 이유치고는 참 형편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실되게 느껴졌다.




림레이는 혀를 내둘렀다.




“순 미친놈들뿐이구나.”




“영감님만 하겠습니까.”




“이제 현자님도 아니고 영감님이냐? 이제 헤어진다고 하니까 막 나가자는 거지?”




림레이는 그렇게 불평하다가, 이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루드거에게 던졌다.




허공에서 가볍게 물건을 낚아챈 루드거는 그것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이건 뭡니까?”




“아티팩트다.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 한 번 정도는 도움이 될 거다.”




루드거는 보석이 박힌 브로치를 유심히 살폈다.




안쪽에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는 걸 보아 아티팩트가 분명했다.




다만, 림레이가 이런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건 꽤나 의문이었다.




아티팩트라 하더라도 그에겐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여성이 쓸 법한 물건이었다.




“내게는 더는 필요 없는 물건이다. 같이 못 가 주는 대신 그걸로 퉁 치마.”




“……그렇습니까.”




하지만 루드거는 그걸 굳이 묻지 않았다.




브로치를 품 안에 갈무리한 루드거는 인사의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 뒤를 아르파와 셈파스, 로이나가 따랐다.




남겨진 림레이는 루드거의 뒷모습을 말없이 응시했다.




“저, 저기. 안 가시나요?”




“……그래. 가야지.”




생각해 보니 이 녀석이 있었군.




사무엘의 말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 림레이는 루드거가 떠난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함께하겠다고 말할 때는 기세를 탔지만, 이제 와서 조금은 후회되는지 로이나가 소심하게 말을 꺼냈다.




“저, 저희 일단 당당하게 뛰쳐나온 것은 좋은데, 정말로 괜찮은 걸까요?”




그녀는 애써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서 루드거에게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도 뭔가 확실한 계획이라든가, 그런 건 있는 거죠?”




“계획은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정면 돌파라고.”




“네? 하지만…….”




로이나는 뭐라고 더 물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복도의 맞은편 너머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싸울 준비나 하십시오.”




스릉.




루드거는 지팡의 손잡이를 잡아 소드스틱을 뽑아 냈다.




그 모습에 로이나가 당황했다.




“카, 칼? 그거 지팡이 아니었어요?! 대체 왜 그런 흉흉한 물건을……!”




“누구에게나 숨겨 놓은 비밀 카드는 있는 법이죠.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 로이나 씨나 셈파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




그건 맞는 말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로이나조차도, 지금까지 모든 힘을 드러낸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를 겁니다.”




루드거의 발끝부터 그림자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다리를 타고 몸까지 번지며, 루드거의 의복을 뒤덮었다.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지닌 것을 전부 꺼내십시오.”




이윽고 그림자가 루드거의 얼굴에 가면을 씌웠다.




번쩍!




역병의사 가면의 눈동자에 푸른 안광이 흘러나왔다.




“죽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마법수 [아테르 녹터누스]




완전히 그림자를 두른 루드거가 그림자 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뒤를 아르파가 뒤쫓았다.




“나도 간다.”




셈파스도 동요하는 일 없이 그 뒤를 쫓았다.




혼자 남겨진 로이나는 그 모습을 황망하게 지켜보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으으. 진짜, 이건 별로 쓰고 싶지 않은데.”




로이나는 입술을 질끈 깨문 뒤, 마력을 일으켰다.




“시간 좀 끌어 줘요!”




로이나의 외침을 뒤로하고 루드거는 가장 선두의 그림자 기사와 맞닥뜨렸다.




녀석은 양손에 쌍창을 쥐고 있었는데, 조금 전 아르파와 싸우던 녀석이 분명했다.




캬아아악!




그림자 기사도 루드거를 알아보고는 두 팔에 쥔 쌍창을 동시에 내질렀다.




“재미있군.”




루드거가 그렇게 중얼거림과 동시에 양어깨의 의복에서 거대한 두 팔이 뻗어 나왔다.




아테르 녹터누스가 양팔을 뻗어 내질러지는 쌍창을 틀어쥐었다.




키기기긱.




그대로 그림자와 그림자가 힘겨루기에 들어가는 순간, 루드거의 소드스틱이 한 줄기 섬광으로 변해 휘둘러졌다.




서걱.




머리가 수직으로 쪼개진 기사의 상체가 뒤로 기우뚱거렸다.




그러나 완전히 쓰러지지 않은 것을 본 아르파가 외쳤다.




“리더!”




“알고 있다.”




그림자 기사는 고작 이 정도의 공격으로 쓰러지지 않는다.




전신을 강대한 마법으로 불사른다고 하더라도 놈들은 끝내 재생한다.




어떻게 보면 약점이 없는 불사의 존재.




하지만 저택의 시스템이 만들어 낸 존재라면 반드시 약점이 있는 법이었다.




‘이게 먹힌다면.’




이론상 가능하지만, 실전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루드거는 그림자 기사의 발아래의 땅을 향해 소드 스틱을 찔러 넣었다.




그림자 기사도 아닌 애꿎은 바닥을 찌르는 모습에 아르파와 셈파스가 의아해하는 순간이었다.




“여기군.”




루드거는 소드스틱에 마력을 불어넣은 뒤, 날 끝에서 모았던 마력을 불꽃처럼 터뜨렸다.




쿵!




저택의 바닥 아래에서 자그마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직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반으로 쪼개진 머리를 천천히 재생시키던 그림자 기사가 가루로 변해 흩어진 것이다.




“와!”




“그림자 기사를 없앴다고?”




아르파와 셈파스가 감탄하고 있을 때, 루드거가 지시를 내렸다.




“놈들은 저택으로부터 마력을 공급받고 있다. 그림자 기사의 발아래, 저택과 맞닿는 지면에 보이지 않는 패스가 연결되어 있다. 그걸 끊어라.”




아르파와 셈파스는 그 말을 알아듣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렇다면 그건 내 특기로군.”




셈파스는 다리를 들어 올려 지면을 크게 쿵 하고 찍었다.




루드거와 대련에서 보여 주었던 그의 마법이 다시금 펼쳐졌다.




다리를 통해 지면에 스며든 마력은 그의 의지를 타고 움직이며 카펫 바닥 아래에서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퍼퍼퍼펑!




위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지만, 목표로 했던 패스를 끊기에는 차고 넘쳤다.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던 그림자 기사들의 모습이 크게 휘청이며 흐릿해졌다.




비밀의 저택으로부터 계속 공급받던 마력에 장애가 생기자 그림자 기사들이 버벅거렸다.




“아르파! 패스를 끊고 본체에 타격을 입혀라!”




“네!”




루드거의 명령에 아르파가 움직였다.




아르파는 오류로 버벅대는 그림자 기사들의 사이로 파고들어 발차기를 내지르고 주먹을 뻗었다.




퍼퍼펑!




작은 체구에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는 파공성과 함께 얻어맞은 기사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사라진 기사들은 다시는 재생하지 못했다.




‘역시 예상대로군.’




놈들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추측으로 알아낸 것은 아니다.




전부 서고 안에 숨겨진 방에서 읽은 기록서 덕분이었다.




‘그림자 기사들은 지맥에 의해 끝없이 마력을 공급받으며 쓰러지지 않는 방어 시스템. 그리고 지맥에서 끌어 올린 마력을 공급해 주는 역할은 저택이 맡는다.’




그림자 기사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마력을 차단해야 했다.




지맥 자체를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지맥에서 끌어 올린 마력을 공급해 주는 마나 패스만 끊어 내면 그만이니까.




‘물론, 이건 영구적이지 못해.’




패스를 끊어도 지맥과 저택이 멀쩡한 이상, 패스는 끝없이 재생하여 다시금 그림자 기사를 소환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버는 것은 충분했다.




“뚫고 나간다!”




루드거는 그렇게 외치며 새롭게 몰려드는 그림자 기사들을 휩쓸었다.




셈파스와 아르파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합을 맞추며 그림자 기사를 처리했다.




셈파스가 패스를 끊으면 아르파가 본체를 타격한다.




그렇게 착실하게 그림자 기사의 숫자를 줄여 나갔다.




하지만.




“리더! 끝이 없어요!”




“계속해서 밀려오는군.”




그림자 기사를 뚫고 나아갈수록, 복도 너머에서 몰려드는 기사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그만큼 소환진에 가깝다는 소리였지만, 기사들의 저항 또한 거세졌다.




‘이럴 때 반마법이 있었으면 손쉬웠을 텐데.’




캬아아악!




기사가 괴성을 지르며 할버드를 휘둘렀다.




루드거는 아테르 녹터누스의 양팔로 공격을 막으려다가, 상상 이상의 힘을 느끼고는 공격을 옆으로 흘려 냈다.




콰앙!




지면에 박힌 할버드의 기세는 매우 파괴적이었다.




‘위력이 올랐다고?’




루드거는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새롭게 등장한 그림자 기사들은 처음 싸웠던 녀석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걸.




이전 그림자 기사들은 안광만 흘러나왔다면.




지금 기사들은 갑옷의 이음매 틈새 전체에서 녹광이 넘치고 있었다.




여기서 시간이 지체되면 더 강한 녀석이 쏟아져 나올 것은 자명했다.




‘아직까지는 상대할 만하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지?’




5분?




10분?




처음 등장한 기사들과 지금 기사들의 힘을 비교하면, 길어도 10분을 넘기면 안 됐다.




‘여기서 큰 마법을 날려 일거에 쓸어버려야 하나?’




그러자니 그 뒤에 있을 싸움도 생각해야 했다.




그림자 기사의 소환진에는 검은 여명회도 있을 테니까.




어쩌면 레슬리 본인마저도.




루드거가 고민하던 그 찰나의 순간, 등 뒤에서 거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대기를 타고 맥동하는 거대한 파장.




루드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그래. 저쪽이 준비하던 것이 있었지.’




루드거는 뒤를 돌아봤다.




그것은 셈파스와 아르파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고개 숙이세요!”




평소와 다른 카랑카랑한 로이나의 목소리에 루드거를 비롯한 셈파스와 아르파는 경고를 듣곤 몸을 숙였다.




촤라락!




직후 그들의 머리 위를 푸르스름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촉수가 가로지르며 지나쳤다.




촉수는 그림자 기사들을 무참히 꿰뚫었다.




키아아아악!!




그림자 기사들이 괴성을 내질렀다.




어떤 공격에도 반응이 없던 놈들이 보인 것치고는 실로 기괴한 광경.




루드거는 곧바로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촉수에 찔린 기사들이 흡수되고 있었다.




촉수는 마치 빨대처럼, 그림자 기사를 구성하는 마력을 흡수해 빨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촉수의 근원지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기묘한 덩어리였다.




“으엑. 징그러.”




아르파가 덩어리를 보고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다.




그러는 와중에도 덩어리는 촉수를 통해 그림자 기사들을 흡수하며 점점 덩치를 불려 나갔다.




“로이나 씨. 저건 대체…….”




“제 마법수예요.”




“…….”




“왜, 왜 그런 시선으로 보는 건데요! 알아요! 저도 이상한 거! 징그럽다고 생각했죠?!”




솔직히 그랬지만, 루드거는 곧바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냥, 왜 이렇게 유용한 녀석을 이제 소환했는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제, 제 마법수가 이런 형태라 하니까 좀 그러잖아요. 저, 저는 이래 보여도 인텔리한 이미지라고요!”




“……인텔리 말입니까?”




평소에도 전혀 인텔리하지 않은 사람이 인텔리는 무슨.




그 말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하지만 로이나의 심정을 일부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로이나의 마법수는 비위가 좋은 루드거가 봐도 좀 그랬으니까.




차라리 제보당의 괴수가 훨씬 더 나을 지경.




‘게다가 자세히 보니 민달팽이였잖아?’




살덩어리처럼 보였던 것은 알고 보니 거대한 민달팽이였다.




생긴 것은 그래도 그 효과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처음과 달리 더욱 강해진 그림자 기사들마저도 맥도 못 쓰고 마법수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이거라면, 소환진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겠군요. 유지 가능합니까?”




“네. 가능해요.”




“그러면 도움 좀 받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여기까지 와서 숨길 것도 없었기에 로이나는 반쯤 포기한 목소리로 마법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밀어붙여! 낑낑아!”




“세상에. 이름 진짜 되게 못 짓는…… 읍.”




“조용.”




루드거는 그림자로 뒤덮인 손으로 아르파의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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