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86화 정면 돌파 (2)
◈ 386화 정면 돌파 (2)
루드거를 비롯한 일행은 로이나가 소환한 마법수 덕분에 힘을 아낄 수 있었다.
민달팽이 마법수는 움직임은 느렸지만, 멈추지 않는 전차 같았다.
느리다는 것도 덩치에 비해서 그런 것이지, 사람으로 치면 조금 빨리 걷는 수준이라 속도도 나쁘지 않았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그림자 기사들의 마력을 빨아먹으면서 점차 덩치가 커진다고 해야 할까.
원래도 거대했지만, 이제는 복도를 거의 가득 채울 정도가 됐다.
“이름은 이상해도 능력은 대단하네요.”
아르파가 기어코 그 말을 꺼내 버렸다.
셈파스와 루드거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지만, 다행히도 걱정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낑낑이의 바로 뒤를 따라가던 로이나에게서 어떠한 반응도 없었던 것이다.
아니. 사실 반응은 있었다.
불끈 쥔 주먹이나, 잘게 떨리는 어깨.
아르파의 말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일부러 들리지 않은 척, 못 들은 척 넘겼다.
‘본인도 부끄러운 건 알고 있군.’
생긴 것도 징그럽지만, 이름도 우스꽝스럽다.
마법수의 형태야 소환사 본인이 멋대로 바꿀 수 없다 쳐도, 이름을 지은 것은 순전히 로이나 본인이다.
아마 로이나는 두고두고 저 이름을 지은 걸 후회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한번 정한 마법수의 이름은 평생 바꿀 수 없다.
이름은 곧 주인이 마법수에게 새긴 계약의 일종에 가깝다. 정하는 순간 그것은 마법수의 본질이 되고 만다.
이름을 바꾼다면 본질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마법수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수업 때 아이들에게 마법수의 이름을 지을 때는 심사숙고해서 신중하게 지으라고 충고를 했어야 하는데.’
바쁜 와중이라 그 부분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보통은 알아서 멋지거나,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어감으로 짓기는 하는데.
이런 장소에서 그 극단적인 예시를 목격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러는 사이에도 일행은 복도를 빠르게 밀고 나갔다.
로이나의 마법수, 낑낑이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더는 거대해지지 않았다.
그 대신 몸에서 질척이는 점액을 뿜어내 벽과 천장, 바닥을 적셨을 뿐.
아르파가 신발 바닥에 붙는 끈적거리는 점액을 보며 질겁했다.
“으엑.”
“이건, 액화된 마력이로군.”
루드거는 로이나의 마법수가 만들어 낸 점액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마법수가 흡수한 마나를 다른 형태로 체외로 배출시킨 결과물이었다.
앞장서던 로이나가 자못 뿌듯한 어조로 답했다.
“맞아요. 실제 액체보다는 점성이 높은, 반고체 젤 형태죠.”
“이것도 마법수의 능력 중 하나입니까?”
“제 마법수는 실질적으로 전투에 적합하지 않아요. 오히려 지원 쪽에 가깝거든요.”
“지원이라니.”
루드거는 사방에 가득한 점액을 보며 불안한 상상을 떠올렸다.
“설마 이거…….”
“마력이 부족할 때 섭취하면 회복이 가능해요. 사실상 즉석에서 만든 마나 포션이에요.”
“…….”
루드거는 놀랐다.
그것은 꽤 복합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하나는 바로 즉석에서 마나 포션을 만들 수 있는 마법수의 존재였다.
마나를 흡수해야 하는 조건이 붙어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결과물이 너무 뛰어나다.
물이 없는 사막에서 이슬을 끌어모아 자동으로 물을 뽑아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위기의 순간에 정말 큰 도움을 줄 마법수가 분명했다.
지금까지 루드거가 봐 온 여러 마법수 중에서도, 서포팅 쪽으로는 단연코 손에 꼽을 정도.
그리고 다른 의미로 놀란 것은.
정작 그 대단한 과정의 결과물이 저 끈적거리는 점액질이라는 것이었다.
“설마, 이걸 직접 먹어야 마나가 회복되는 겁니까?”
“당연하죠. 그게 아니면 마나를 회복할 수 없잖아요. 포션을 피부에 바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초대형 민달팽이한테서 나온 점액질을 먹으라고?
그건 당장 마력 고갈로 쓰러진다 해도 고르지 않을 선택지였다.
그 이상으로 루드거는 로이나의 확신에 찬 대답이 못내 걸렸다.
“……혹시 드셔 본 겁니까?”
“…….”
로이나는 시선을 회피했다.
하지만 삐죽 내민 입으로, 그녀는 약간이지만 항변하듯 중얼거렸다.
“……은근 맛있다고요.”
“…….”
루드거는 로이나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로이나가 빼액 소리쳤다.
“아, 왜요!”
“다가오지 마십시오.”
“뭐가요! 제, 제 마법수가 만들어 낸 결과물을 먹은 게 뭐가 문제예요?”
“먹은 게 문제입니다.”
“이, 이건 실험이었어요! 연구의 일종! 그, 그러니 마법사라면 당연한 일이에요!”
“최소한 저는 안 먹을 거 같습니다만.”
“…….”
로이나는 먹다 보면 젤리 같아서 맛이 나쁘지 않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 이상 자신이 떠들어 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뭐, 다른 효과는 없습니까?”
“없어요.”
아, 하고 로이나가 하나 떠올랐는지 입술을 헤 벌렸다.
“뭡니까?”
“피부에 발랐던 적이 있는데, 꽤 시원해서 좋았어요.”
“피부 말입니까?”
루드거는 로이나의 피부를 슬쩍 살폈다.
운동 하나 하지 않은 사람치고는 피부가 희고 곱다.
물론 6위계를 달성하며 강대한 마나 때문에 체내의 노폐물이 많이 없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여성들이 낑낑이에게 달라붙을 듯한 미래가 보이는 건 단순한 착각일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루드거는 점차 많은 점액질을 뿜어내는 낑낑이를 살폈다.
뭔가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소환수의 주인 로이나도 마찬가지였다.
“큰일이네요.”
“마법수가 한계에 도달한 겁니까?”
“네. 낑낑이가 마나를 흡수하면서 그것을 최대한 많이 배출하고 있지만, 배출하는 속도보다 흡수하는 양이 더 많아요.”
지금도 전진해 나가는 마법수는 그림자 기사들의 마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마법수라 하더라도 한계는 존재하는 법이다.
이대로라면 마법수가 역소환되고 만다.
로이나는 무언가 굳게 결심을 했는지 창틀에 흐르는 점액질을 한 손으로 크게 집어 올렸다.
“이, 이렇게 된 이상 다시 한번 큰 마법을…… 꺄악!”
따악!
로이나가 비명을 질렀다.
루드거가 소드스틱 검집으로 로이나의 머리를 때리면서 나는 소리였다.
로이나가 눈물을 글썽이며 루드거를 돌아봤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대체 왜?’라는 감정이 가득했다.
“비위 상하는 짓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 주겠습니까.”
“비, 비위 상하는 짓이라니. 제가 얼마나 큰 결심을 하고 한 행동인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도착했으니까요.”
꾸물거리며 앞장서던 낑낑이가 옆으로 몸을 스윽 틀었다.
눈앞에 넓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정문을 통해 들어온 중앙 홀과 비슷한 거대한 홀.
그 중심에 마법진이 있었다.
마법진 중심에서 수정이 공중에 떠 있었는데, 수정을 중심으로 그림자 기사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그중 일행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마법진 주위에 포진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놈들이다.
이번 사건의 원흉.
루드거가 저들을 알아봤듯, 적들 또한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챘다.
“제길! 어떻게 여기까지?”
“무시해! 기사들로 밀어붙여!”
기사들이 일제히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낑낑아!”
로이나가 외치자 이제는 집채만 한 거대한 민달팽이가 최전선에 서서 기사들을 막아 냈다.
기사들이 공격을 퍼부었지만, 매끄러운 피부와 거대한 살덩어리 때문인지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착실히 대미지는 누적되었다.
벌어진 상처의 사이로, 흡수했던 마나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으니까.
“오래 못 버텨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루드거가 발을 내디디며 높게 뛰어올랐다.
그의 양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그림자 망토가 얇고 넓게 펼쳐지며 날개의 형상을 취했다.
그대로 기사들을 뛰어넘어 허공을 활공한 루드거는 마법진을 다루는 적들의 중심으로 떨어졌다.
“적이다!”
“하나야! 죽여 버려!”
검은 여명회의 오더들은 루드거를 알아보지 못했다.
얼굴에 검은 그림자의 가면을 두르고 있어서였고, 그것은 루드거가 노린 바였다.
여기서 그들이 루드거를 알아보고 아는 척이라도 했다가는, 입장이 난처해졌을 테니까.
사방에서 루드거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이 자리에 모인 검은 여명회의 잔당들은 모두 실력 꽤 있는 마법사들.
레슬리 휘하 정예들일 테니, 당연히 그 수준도 높았다.
휘오오오!
휘몰아치는 마력은 아테르 녹터누스를 두른 루드거의 피부도 울리게 할 정도였다.
고위계 마법. 그것도 위력이 강한 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사용하기엔 매우 위험한 마법이지만.
‘죽음을 각오한 자들에게는, 의미 없는 거겠지.’
검은 여명회가 더욱이 정신이 나간 것은,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놈들은 같은 동료들이 휘말려 죽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은 저들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다.
동료의 손에 죽더라도, 이 자리만큼은 반드시 지키려는 광기에 가까웠다.
일부는 준비해 둔 방어 마법을 두르며 루드거의 공격을 막고자 했다.
방어조와 공격조의 역할 분배가 확실하다.
“죽어!”
세컨드 오더로 추정되는 자가 그렇게 외치며 루드거를 향해 마법을 쏘았다.
4개나 되는 얼음의 기둥이 루드거를 향해 대포처럼 쏘아졌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루드거는 발아래로 쑥 꺼지듯 사라졌다.
콰지지직!
애꿎은 기둥은 다른 여명회의 오더들과 막 일어난 그림자 기사를 휩쓸었다.
“사라졌어!”
당황하던 세컨드 오더는 루드거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행동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푸욱!
등 뒤의 그림자에서 솟아오른 루드거가, 소드스틱으로 그의 심장을 찔렀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아무리 마력이 가득한 저택이어도, 이 짧은 거리를 움직이는 건 일도 아니지.”
세컨드 오더는 가면 속에서 울리는 루드거의 대답에 눈을 부릅뜬 채로 숨을 거두었다.
뒤늦게 세컨드 오더의 죽음을 알아차린 다른 마법사들이 반격을 가하려 했지만.
루드거의 마법이 훨씬 더 빨랐다.
세컨드 오더를 찔러 죽이는 동시에 발현한 [소스코드]의 술식.
루드거의 눈앞에 그어지는 한 줄기 마력의 실선.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기계처럼 정밀하고 복잡한 술식의 집합체다.
마법의 발현.
소스코드를 통해 출력한 무수한 마법들이 사방으로 난사되며 검은 여명회의 잔당들을 휩쓸었다.
“바, 방어해라!”
눈치 빠른 놈들은 곧바로 방어에 들어갔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이 자리에는 루드거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콰아앙!
뒤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막 반격의 불씨를 올리려던 여명회의 오더들을 휩쓸었다.
셈파스와 아르파가 합류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로이나가 마법을 사용해 길을 열었고, 그 틈새를 비집고 다가온 셈파스와 아르파가 적들을 휘저었다.
정형화된 싸움이 아닌, 피아 구분이 힘든 개싸움.
그러나 셈파스와 아르파, 그 누구도 이 진흙탕 싸움을 꺼리지 않았다.
난전이 가장 위험한 것은 무분별한 싸움 속에서 피아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피아를 확실히 구분하는 오토마톤과 난전이 주 종목인 전투 마법사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이 경쟁이라도 하듯 마법사들을 무자비하게 쓰러뜨렸다.
검은 여명회로선 앞뒤로 포위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숫자는 이쪽이 더 많은데 포위를 당했다니.
얼핏 보면 웃기는 말이었지만, 개개인의 실력만 놓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지켜! 여길 목숨 걸고 지키라고!”
“계획을 망가뜨릴 수는 없다!”
검은 여명회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싸우려 들었다.
하지만 힘없는 자들의 발악은 결국, 무의미한 목숨을 소모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검은 여명회의 잔당이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챙그랑!
루드거는 마법진 중심에 떠올라 있는 자그마한 수정을 파괴했다.
동시에 끝없이 생성되던 그림자 기사들이 신기루처럼 허물어졌다.
홀을 대부분 채우던 기사들이 사라지자 일행들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특히 마법수와 함께 기사들을 집중적으로 담당하던 로이나가 고생이 컸다.
“다들 마력을 많이 소모하신 거 같은데, 드실래요?”
“…….”
“…….”
손에 젤을 한 움큼 쥔 로이나가 내밀며 말했다.
루드거와 셈파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르파는 자신은 마법사가 아니니 전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결국, 루드거가 또다시 총대를 메고 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마나를 소모하지는 않았습니다.”
“거짓말 마요. 제가 그런 것도 모를까 봐 그래요? 많이 소모하셨잖아요!”
“……저는 따로 챙겨 먹는 회복약이 있으니 마음만 받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아끼면 더 좋잖아요. 이건 천연 마나 회복제라 얼마든지 먹어도 된 다고요.”
로이나는 이제 뻔뻔하게 나갈 작정이었는지 집요하게 점액을 강요했다.
이쯤 되면 자기만 죽을 수 없다는 마인드가 분명했다.
“자. 드세요. 은근 맛있다고요?”
슬슬 눈빛도 맛이 가는 것 같아서, 루드거가 그만하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
로이나가 눈을 크게 뜨더니, 이윽고 몸을 빳빳하게 세우고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난데없는 상황.
그러나 자리의 모두는 재빠르게 대응에 들어갔다.
티팅!
이어지는 날카로운 마력의 실을 각기 셈파스와 루드거의 배리어가 튕겨 냈다.
기습.
새로운 적의 출현.
일행의 머릿속에 동시에 그 단어가 떠올랐다.
셈파스가 다음 반격을 하려고 하자, 루드거가 외쳤다.
“방어하지 말고 물러나!”
셈파스는 경고를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기습을 위해 은밀하게 날아온 공격 다음은 상대방을 방어째로 부수는 거대한 마력탄이었다.
콰칭!
마력 방벽이 부서지며 공격에 적중당한 셈파스가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그러나 루드거는 그의 상태를 미처 살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허점을 드러내면 당한다.’
적은 강했다.
아무리 그라 하더라도, 여기서 등을 돌리면 목을 물어뜯길 것이 분명했다.
루드거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으며 홀로 들어오는 적을 응시했다.
“결국, 오셨군요.”
그의 푸른 눈빛에는 미약하지만 씁쓸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림레이 어르신.”
“그래.”
차르륵.
석장 형태의 지팡이를 흔들며 림레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오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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