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92화 서로 다른 생각 (1)
◈ 392화 서로 다른 생각 (1)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전초 기지가…….”
그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전초 기지에서 무언가 일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탐험대들은 황급히 전초 기지로 복귀했다.
“탐험대다!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어!”
때마침 전초 기지의 외부 방벽을 지키던 마법사가 그들을 알아보곤 크게 반기며 외쳤다.
가까이서 본 방벽의 상황은 더 처참했다.
방벽 근처에는 불에 타거나 얼어붙은 짐승들의 시체가 보였다.
그리고 방벽의 곳곳에 새겨진 파괴의 흔적까지도.
‘짐승들이 습격한 건가?’
지맥의 분출로 인해 놀란 짐승들이 날뛴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전초 기지 내부의 상황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내부 상태는 바깥에서 본 것보다 더 심각했다.
막사 곳곳이 불에 타 있었고, 전초 기지 곳곳에 파괴의 흔적이 가득했다.
죽은 사람들도 있어서 미처 회수하지 못한 시체가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겨우 한숨 돌리려던 탐험대는 피로감이 가득한 얼굴로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중앙 광장은 혼잡했다.
부상자들은 모두 중앙 광장에 누워 있었고, 주위에는 누구 할 것 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부상자들은 이쪽으로! 천천히 옮기세요! 거기 그쪽 마법사! 남은 포션 모두 가져오세요!”
그 혼돈의 상황에서 큰 목소리로 무리를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행동도 행동이지만, 눈의 요정이 내려온 것 같은 외모가 시선을 잡아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예카테리나 여왕.
열심히 전초기지의 인원을 진두지휘하며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단순히 명령을 내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본인이 부상자의 상처를 지혈하고 붕대를 감기도 했다.
그녀의 곁에는 함께 따라온 두 보좌관이 열심히 부상자들을 이송하고 있었다.
“왕족인데도 저런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니.”
“그보다 대체 왜 전초 기지가 이런…….”
탐험대는 예카테리나의 모습에 감탄하다가도, 현재 상황에 당황했다.
카사르 분지에선 이 전초 기지야말로 무엇보다도 안전한 곳이 아니었던가.
그때 탐험대를 발견한 마법사 한 명이 예카테리나에게 다가가 뭐라고 말했다.
예카테리나는 이쪽을 돌아보더니 쌍둥이 보좌관을 이끌고 다가왔다.
공개적인 자리이다 보니, 그녀의 표정은 호텔 로비에서 봤던 것처럼 꽤 정갈했다.
“모두 잘 돌아오셨습니다. 혹시 이 자리의 대표자가 있나요?”
예카테리나가 묻자 3명이 앞으로 나왔다.
한 명은 구 마탑의 책임자 그레고리엄 솔루트.
다른 하나는 신 마탑의 책임자 리우메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유 신분, 여러 학파 책임자인 데릭 올슨이었다.
위계가 높고 뛰어난 실력과 경험을 지닌 마법사들.
그들이 모두 예카테리나 여왕을 향해 예를 차렸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여왕님. 데릭 올슨이라고 합니다. 공식적인 예의를 차리지 못한 것을 양해해 주시길.”
“지금 상황에서는 그럴 필요 없으니 이해해요.”
“그보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예카테리나는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오늘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1시간 전이었어요. 갑자기 사방에서 이곳에 서식하는 짐승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죠.”
카사르 분지에서 서식하는 짐승들은 바깥의 평범한 동물과는 그 수준이 달랐다.
과도한 마나가 분포되어 있는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며, 이곳의 생태계를 이룬 짐승이다.
마법사들은 당연히 그런 짐승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방벽을 두드리고, 일부는 무너지기까지 했어요. 저희는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죠.”
방벽 근처에 널린 시체만 봐도 그 숫자가 절대로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주변에 새겨진 파괴의 흔적은, 그만큼 싸움이 치열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전초 기지의 방벽은 쉽게 무너질 것이 아니었을 텐데요.”
데릭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것은 다른 탐험대도 같은 마음이었다.
간이로 세웠다고 해도 천 단위가 넘는 마법사들이 머무는 전초 기지다.
그리고 마법사 이외에도 관광을 위해 돈이 많거나 신분이 높으신 분이 간혹 찾아오는 곳이기에, 안전이 최우선으로 꼽혔다.
방벽은 실시간으로 계속 보수 유지와 점검을 실시하며 혹시 모를 사태를 방비하기 위한 최선의 준비가 돼 있다.
짐승들이 이 방벽에 몰려들었다고 해도, 전초 기지 내부까지 혼란스러운 건 말이 안 됐다.
“맞아요. 실제로 외부의 공격은 큰 피해 없이 막아 냈죠. 문제가 있다면, 그건 내부의 일이었겠죠.”
“……설마.”
데릭도 무언가 눈치챈 것인지 눈을 크게 떴다.
예카테리나는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에 배신자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외부 습격의 때에 맞춰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테러를 일으켰죠.”
꽤 많은 마법사가 습격을 막기 위해 방벽으로 몰렸기에 상대적으로 내부가 취약해진 부분을 노린 것이었다.
그렇게 벌어진 참사로 인해 많은 마법사가 죽거나 다쳤다.
“배신자, 말입니까? 대체 누가…….”
“전부 섞여 있었어요. 입고 있는 복장도, 로브도, 거기에 새겨진 문양도. 아마 오래전부터 숨어들어 있던 첩자들이었겠죠.”
“놈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도망쳤어요. 탐험대가 오기 전, 그러니까 30분도 안 됐네요.”
이쪽도 마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곧바로 태세를 정비하고 대응에 들어갔지만, 저들은 영악하게도 이쪽이 움직이려 하자 바로 내빼 버렸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전초 기지 바깥으로 도망치듯 후퇴했다.
“어찌 이런 일이…….”
“그보다 탐험대는 괜찮은 건가요? 출발했을 때보다…… 숫자가 많이 줄었네요.”
예카테리나가 피로에 찌든 탐험대를 보며 물었다.
전초 기지의 상태도 심각했지만, 탐험대도 몰골만 보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저희도 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데릭 올슨은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예카테리나에게 저택에서 괴물들이 나타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저택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럴 수가! 피해는 얼마나 되죠?!”
“저택 안으로 향했던 사람 중 돌아온 수는 반이 채 되지 않습니다.”
200명 가까이 안에 들어가서 100명도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렉서러 등급의 마법사분들도 더러 있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그건…….”
데릭도 그것까진 잘 몰랐기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루드거 일행을 향했다.
이 자리에서 6위계 마법사가 둘이나 포함된 팀을 이룬 것은 그들이 유일했으니까.
“어, 어?”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로이나가 당혹스러워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며 루드거를 앞으로 내세웠다.
“뭐 하는 겁니까?”
“저, 저는 이런 자리가 불편해서.”
엄살이 아닌 게, 로이나는 당장이라도 토할 것처럼 안색이 창백했다.
어쩔 수 없군.
루드거는 이쪽을 향하는 마법사들을 향해 저택에서 있던 일을 말해 주었다.
“림레이 마법사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루드거 첼리시 씨였죠. 현자님이 어쩌다 돌아가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저택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 기억하십니까? 그림자 괴물들이 나타나 마구잡이로 날뛰었죠.”
“예. 그런데 그걸 왜 지금 이야기하시는지…….”
“그 일의 배후에 림레이 마법사님이 있었습니다.”
“뭐라고요?”
루드거에게서 흘러나온 진실에 좌중이 경악으로 요동쳤다.
“그 말이 정말입니까? 아니면 어떠한 오해가…….”
“그 일에 관해서는 제 일행들이 확실히 증언해 줄 겁니다.”
루드거가 그렇게 말하자 셈파스와 로이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루드거의 말에 동조해 주었다.
같은 6위계 마법사가 저렇게 나서니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진짜다. 거짓말이다. 이 자리에서 굳이 저런 말을 할 이유는 없다 등등.
“당신들도 그러면 한패 아니야?!”
누군가 의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렇게 외쳤다.
그 말에 일부 마법사들이 루드거 일행을 노려보았다.
함께 활동하던 림레이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루드거 일행도 용의선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였다.
“지금 저희를 의심하는 겁니까?”
“아니라곤 할 수는 없지 않나.”
“그 말은 즉, 저를 포함한 로이나 씨도 그쪽과 한패라는 말이겠군요.”
루드거가 로이나의 이름을 들먹이자 가장 먼저 의심을 표출한 마법사가 침음성을 흘렸다.
로이나 때문인지 학파 연합회 소속 마법사들은 반대로 루드거를 두둔하고 나섰다.
“공범이었으면 애초에 이렇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겠지.”
“저명한 로이나 파블리니 마법사님을 의심하는 건가?”
다른 건 몰라도 6위계 마법사의 위명은 대단했다.
의심을 키우던 사람들도 로이나의 명성에 그 의심을 접게 됐으니까.
“정리하자면,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인 셈이네요.”
현자 림레이의 배신과 더불어 진리학파의 궤멸.
벨카트 벤마르크를 비롯한 전투 마법사들의 사망까지.
저택으로 향했던 사람 중 꽤 많은 실력자가 죽었다.
심지어 저택 아래의 지맥이 요동치며 마력 에너지가 용솟음치고 있다.
잔잔한 수면 위에 물방울이 떨어지듯.
소요와 절망이 파문을 그리며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이, 이러다 다 죽는 거 아니야?”
“웃기지 말라 그래! 내, 내가 대체 왜……!”
부정적인 감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되어 다른 자들에게 그 이상 가는 두려움을 전파시킨다.
그것은 그야말로 전염병이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그 순간 높고 청아한 목소리가 좌중을 질타했다.
새벽의 안개를 몰아내는 종소리처럼, 머리를 가득 채운 상념이 씻겨 나간다.
모두가 목소리의 주인인 예카테리나 여왕을 응시했다.
“분명 지금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나간 일에 대해 계속 고민해 봤자 지금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어요. 아직 상황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단호하게 말하는 예카테리나의 모습은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의 권위와 카리스마가 가득 흘러넘쳤다.
그녀에게는 사람을 잡아끄는 기묘한 매력이 있었다.
모두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와. 대단해요.”
아르파가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예카테리나의 모습에 나지막이 감탄했다.
하지만 루드거는 안다.
누구보다도 지금 상황을 무서워하는 것은 예카테리나라는 걸.
루드거는 예카테리나의 손끝이 바르르 떨리는 걸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격정에 차서 떠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는 그 반대다.
두려움을 애써 감추며, 억지로 괜찮은 척할 때 보여 주는 습관이었다.
그런데도 예카테리나는 그걸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이 무너지는 순간, 전부 끝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 저 방벽의 바깥에는 신비의 밤의 붕괴를 꾀하는 자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희가 포기하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로 모든 것이 끝이에요.”
“그러면 어쩌면 좋습니까?”
데릭의 물음에 예카테리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싸워야죠!”
예카테리나는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자리의 모두를 차례대로 응시하며 선언했다.
“대비책을 세우고, 방법을 찾고,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저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예카테리나의 모습에, 루드거는 문득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대비책을 세우고, 방법을 찾고, 준비를 갖춰. 적들 손아귀에서 춤추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마키아벨리 시절, 그가 예카테리나에게 직접 건넸던 충고였다.
‘배운 것은 그래도 아직까지 잘 기억하고 있었군.’
싸움을 두려워하면서도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새가슴이면서, 가장 중요한 선택지에서는 결코 눈을 돌리지 않는다.
용기.
그것이 예카테리나의 가장 큰 무기였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이끌리고 기꺼이 따르는 것은, 이런 진실된 행동이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다.
“다들 자신의 역할을 잊지 말아 주세요!”
정리되지 않은 시장을 방불케 하던 번잡한 상황이 차근차근 정리됐다.
부상자들은 치료에 전념하고, 멀쩡한 사람들은 그들을 도왔다.
불에 탄 텐트를 철거하고, 부서진 방벽을 수리하고 보강했다.
각 학파나 조직을 이끄는 대표자들은 저들끼리 모여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회의를 준비했다.
장소는 가장 커다란 텐트의 안쪽.
그 자리에는 루드거도 있었다.
로이나도 부르려 했지만, 그녀는 이런 자리는 질색이라며 차라리 사람들을 돕겠다고 물러났다.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상 루드거에게 책임을 떠넘긴 셈이었다.
“루드거 첼리시 선생님이라고 하셨죠? 만나서 반가워요.”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예카테리나가 루드거에게 먼저 다가왔다.
“우리, 초면은 아니죠? 호텔에서 잠깐 마주쳤으니까요.”
설마 그때 문을 걸어 닫은 것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나?
루드거는 별로 놀라는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둘러댔다.
“이렇게 대화를 제대로 나누는 것은 처음입니다.”
“오호호.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대단히 뛰어난 분이라고요. 마법사로서도 교사로서도 말이죠.”
“소문이 과장되었을 뿐입니다.”
“그건 지켜보면 알게 되겠죠. 앞으로도 잘해 보도록 해요.”
예카테리나는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어 보였다.
‘잘해 보자고?’
루드거는 그런 예카테리나의 태도에 속으로 자그마한 의심을 품었다.
왜 갑자기 나한테 다가와서 친근하게 구는 거지?
‘설마 내 정체를 짐작하기라도 한 건가?’
그럴 기회는 없었을 터다. 이렇게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처음일 거고.
이쪽의 사소한 태도나 허점을 통해 유추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이 바보 같은 아가씨에게 그게 가능할 리가 없는데.’
루드거는 예카테리나를 항상 바보라 불렀다.
물론, 그것은 예카테리나가 정말로 멍청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단순무식에서 무식이 아닌 ‘단순’을 담당하는 쪽에 가깝다.
실제로 예카테리나의 지능은 기본 이상은 된다.
문제는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할 때 지극히 감정적으로 굴 때가 많다는 거였다.
내전 도중에 그런 짓을 자주 벌여서 루드거가 자주 짜증을 내고, 바보라고 질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카테리나도 내심 자존심은 있어서, 자기도 다 좋은 의도로 한 일이라며 바락바락 대들었었다.
두 사람은 내전 동안 많은 의견의 대립을 이루었다.
그런 일이 수차례 벌어지다 보니, 루드거의 머릿속에서 예카테리나는 자연스럽게 ‘모자란 왕녀’라는 이미지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또 묘하게 감은 날카로웠으니, 정말로 뭔가 알아차린 건가?’
루드거는 예카테리나의 뒷모습을 보며 적잖게 긴장했다.
만일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면, 자신이 어쩌다 세오른의 교사가 됐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괜히 책잡히는 일은 사양이었다.
그사이 각 학파의 대표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에 대한 안건을 처리하기 위한 회의였다.
그 순간 구 마탑의 대표자가 나서서 말했다.
“우리는 이 일에 빠지겠습니다.”
회의가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터진 폭탄 발언이었다.
Komentar
Posting Komen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