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94화 애타게 찾는 것 (1)
◈ 394화 애타게 찾는 것 (1)
루드거는 저 소녀가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존재인지는 알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의 영혼.’
림레이는 이곳에서 죽은 사람들은 영원이 갇혀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 아이는 이곳에서 죽은 누군가의 잔재라는 소리였다.
다만, 지금까지 카사르 분지에서 죽은 사람들의 숫자만 해도 꽤 될 텐데, 이렇게 뚜렷한 인간의 형상을 취한 것은 소녀가 유일했다
아니,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아르파의 관측에 따르면 저 숲에도 다른 영혼이 존재했으니까.
그걸 감안해도 눈앞의 소녀가 희귀한 케이스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 유령이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의미이리라.
루드거는 소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아이는 루드거를 알아봤는지 전처럼 도망치거나 숨지 않았다.
하지만 일정 거리까지 오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루드거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 멈춰 섰다.
“누굴 찾는 거지?”
루드거는 저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아이는 누군가를 찾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상황과 관련된, 핵심 열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친구.”
“친구?”
“친구를 찾고 있어.”
“친구의 이름은?”
아이는 동그랗고 투명한 눈동자로 루드거를 빤히 응시했다.
“레슬리.”
“……레슬리라고?”
퍼스트 오더 레슬리.
왜 여기서 그 이름이 나오는 걸까.
루드거는 그것이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레슬리와 모종의 연관이 있는 걸까.
루드거가 그걸 물으려는 순간, 소녀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자리에서 사라졌다.
직후 누군가 루드거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루드거 첼리시. 여기에 있었군.”
“셈파스인가.”
“회의는 끝난 건가? 어떻게 됐지?”
“30분 후, 싸울 사람을 차출해서 방벽 밖으로 나간다.”
루드거는 저들이 지맥에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저택의 일을 겪었던 셈파스였기에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 곧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가. 결국 이렇게 되는군. 만만치 않은 놈들이라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어.”
“그래. 그러니 헤이백 공작님께서 너를 내게 보냈겠지.”
“……대체 언제?”
셈파스가 어떻게 알았냐는 시선으로 루드거를 응시했다.
“언제부터 눈치를 챈 거지?”
“처음 내게 시비를 걸었을 때는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 저택에서 내가 보여 준 모습에도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묵묵히 따라와 주더군.”
“그쪽의 실력은 진짜였으니까.”
“그렇다 해도 일개 교사가 이 정도 실력을 보인 것에 대해 크게 의문을 품지도 않았고 말이야.”
“세오른의 교사가 일개 교사는 아니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쪽만 유독 특이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
“헤이백 공작님의 성격상 나 혼자만으론 불안하니,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그쪽을 보낸 거겠지. 이게 보통 평범한 일은 아니니까.”
셈파스가 약간의 미안함을 내비치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군. 티를 낼 생각은 없었어.”
“알고 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겠지. 헤이백 공작님이 나에게는 들키지 말라고도 주의를 줬을 거고.”
“그쪽의 입장이 난처해지고, 또 기분을 상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하셨으니까. 그래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 하셨지. 결국엔 들켜 버렸지만. 혹시 화났나?”
“별로 화가 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굴 생각은 없어. 내가 공작님의 처지였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테니까. 그보다 그쪽이 카다투샨 가문과 관계가 있을 줄은 몰랐는걸.”
“예전에 도움을 받은 것이 있었다.”
“그렇군.”
루드거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묘하게 상황이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저택으로 향했던 사람 중 이쪽에게 순수한 호기심으로 다가온 사람이 없었다니.
아니, 없지는 않나?
로이나 파블리니는 순수한 선의로 움직인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뭔가 정보를 알아낸 모양이지?”
“……혹시 마음을 읽을 줄 아나?”
“무슨 이상한 소리를.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정보를 입수했을 것 아닌가.”
루드거의 지적대로 셈파스는 전초 기지에서 여러 마법사를 만나 정보를 모으는 데 주력했다.
“꽤나 중요한 정보인가 보군. 이렇게 따로 찾아올 정도라면 말이야.”
“림레이 영감…… 그의 행동이 썩 수상해서 말이지. 오랫동안 이 일을 준비해 왔다면 필시 단서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신비의 밤에 꽤 많이 참석했던 마법사들에게 과거의 그가 어땠는지에 대해서 열심히 캐물었지.”
“대답해 주던가?”
“인상 좀 찡그리니 술술 불더군.”
“……이런 쪽에서는 때론 악명이 도움이 되는군. 그래서 뭐가 나왔지?”
“일단, 림레이는 이곳에서 자신의 딸을 잃었다. 이름은 이자벨라. 진리학파 소속으로서, 당시 젊은 여성 마법학자 중에서도 꽤 유망주였다고 하더군.”
“이자벨라라…….”
이자벨라는 이곳에서 행방불명됐다.
마력의 폭풍에 휘말렸으니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알려지지 않은 소식이 있었다.”
“그게 대체 뭐지?”
“이자벨라에게는 정혼자가 있었다더군. 그리고 실제로 함께 마법을 연구하던 사이기도 했고.”
“……이름이 뭐지?”
“레슬리.”
셈파스의 대답에 루드거는 역시나 싶었다.
림레이와 레슬리는 결국 별개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성이 없는 평민. 이자벨라의 정혼자였고, 현재 행방불명된 사람이야.”
“행방불명이지만 살아 있었던 건가.”
“아마 림레이와 손을 잡고서 이번 일을 벌인 거겠지. 그 이유는, 세상을 향한 복수일 테고.”
물론 복수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림레이의 계획을 들어 보면, 그들은 이곳에 갇힌 이자벨라의 영혼에 자유를 줄 생각이었다.
“레슬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수소문해 봤나?”
“진리학파에 소속되어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 빼고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어. 아마 당시에도 존재감이 크게 없었던 모양이고.”
“다른 진리학파 소속 마법사에게 물어볼 수는…… 없겠군.”
“핵심 인원들은 저택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니까.”
그에 대해서 알고 싶어도 당장에는 무리라는 소리였다.
“당시 진리학파에 소속된 젊은 마법사치고는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것으로 보여.”
“진리학파에 젊은 사람들도 있었나?”
“진리학파가 지금은 나이 먹은 노인네들이 많아서 그렇지, 그전에는 나름 맑은 물이 들어오기도 했어.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인 것이 이자벨라였고 괜찮은 동기들도 있었지.”
셈파스는 그렇게 말하며 그림을 한 장 꺼내 내밀었다.
“이건 어디서 가져온 거지?”
“전초 기지의 한쪽에 세워진 위령비. 그곳에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간이 무덤이 있다. 거기서 가져왔지.”
“……죽은 사람의 물건을 가져왔다고?”
“지금은 그걸 따질 상황이 아니니까.”
그 말에 묘하게 납득하면서 루드거는 그림을 살폈다.
그림은 여러 사람이 함께 그려진 단체 초상화였다.
초상화의 중심에는 지금보다 더 젊어 보이는 토르테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토르테이를 중심으로 한 진리학파의 중진들이 가운데에.
그리고 양옆으로 새로 들어온 젊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루드거의 시선이 그림의 우측을 향했다.
유독 눈에 띄는 미녀가 있었다.
찬란한 블론드 헤어를 단발로 기른 여인이었다.
“이쪽이 이자벨라겠군.”
“그래.”
“그렇다면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레슬리인가?”
루드거는 이자벨라 곁에 선 선한 인상의 남자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특별한 관계임을 암시하듯, 그림 속에서 서로 바짝 붙어 있었다.
레슬리는 어딘가 순박한 인상이었다.
막 시골에 상경한 촌놈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뭔가 퍼스트 오더 레슬리라는 인물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오더 시노드에서 보았던 그는 이미지로는 냉철하고 중후한 중년이었으니까.
‘세월이 흘렀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당장 이 초상화만 해도 아주 오래전에 그려진 것이었다.
림레이 또한 그려져 있었는데, 그는 토르테이와 함께 있지 않고 자신의 딸인 이자벨라 근처에 있었다.
루드거는 림레이의 모습을 한동안 보다가, 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눈을 빛냈다.
딱딱한 표정과 단호하게 다물어진 입.
마치 군인을 보는 것 같은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벨카트 벤마르크로군.”
루드거는 초상화 속 인물을 단번에 알아봤다.
아르파가 말했던, 신경 써야 할 마법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저택에서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 사람도 진리학파 소속 출신이었나.”
왜 저택에서 살해당했나 했더니, 진리학파 출신이라 그랬던 거였다.
림레이는 당초에 진리학파 마법사들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으니까.
“데릭 올슨? 그도 진리학파 출신이었다고?”
루드거는 초상화 속에서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아. 그랬었지. 그렇게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진리학파 출신들이 다들 꽤 한가락 하는 모양이로군.”
“예전이라 해도 괜히 명성을 얻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것도 오래전의 일이지. 지금은 노인들만 남은, 망령들의 다과회 정도로 전락해 버렸고.”
“흐음.”
데릭 올슨도 저택에 갔던 사람 중 하나였다.
진리학파 출신이라면 림레이의 복수 대상 중 하나였을 터.
그런데도 그는 살아남았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
“그보다 이제 곧 출정인가?”
“그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
“인원 편제는?”
“움직이는 건 총 3개의 팀이 될 거다. 그리고 서로 합이 맞는 사람들끼리 움직이겠지.”
셈파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구 마탑과 신 마탑, 그리고 학파 연합회인가.”
“그 셋이 주축이 되고, 거기에 자유 소속 신분의 마법사들이 참여하게 될 거다. 그러니 나는 그 셋 중 하나에 들어가게 되겠지.”
“흩어져서 움직여야 한다면, 함께는 못 가겠군.”
“아마 우리 둘은 각자 구 마탑과 신 마탑의 파벌에 껴서 가게 될 거다. 로이나 씨가 학파 연합회 소속이니 어쩔 수 없지.”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어.”
셈파스는 남은 시간 동안 더 찾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찾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셈파스가 떠난 걸 확인한 루드거는 다시금 소녀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사라진 뒤인지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 버렸나…….’
기다린다고 해서 나타날 것 같지는 않았기에 루드거는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일단 로이나와 아르파에게도 상황을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레슬리를 찾는 소녀의 영혼이라.’
그림에 그려진 이자벨라의 모습은 밝은 금발이 눈에 띄는 여인이었다.
어린 소녀의 머리색도 마찬가지였다.
흔하다면 흔한 머리색이지만, 루드거는 그걸 우연이라고 치부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혼자를 찾는 죽은 여인의 영혼과 그런 그녀를 자유롭게 해 주려는 남자인가.’
그야말로 비극적인 로맨스다.
하지만 그 결말이 대량 학살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 * *
마법사들은 총 3개의 팀으로 나뉘었다.
출정을 앞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따지는 눈치 없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지금 최악의 사태에 직면해 있으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뚜렷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표정에 어린 것은 극도의 긴장감.
특히 전초 기지에 남을 사람들은 거의 패닉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우리는 그저 관광을 왔을 뿐인데.”
신비의 밤이라 하지만, 전부 마법사들만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돈 많은 갑부나 일부 귀족들은 1년에 몇 없는 진귀한 경험을 하기 위해 카사르 분지에 찾아오고는 한다.
하필이면 이번 신비의 밤에 찾아온 것은 그들에게 참 운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날뛰었을 만한 그들이 지금 가만히 있는 것은 순전히 예카테리나 여왕의 덕이었다.
이 자리에서 사회적인 직위가 가장 높은 그녀가 차분하니 다른 사람들도 크게 날뛰지 않은 것이다.
예카테리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지금 방벽 바깥으로 떠날 마법사들과 함께 싸우고 싶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그녀는 마법에 대한 문외한이며, 싸움도 그렇게 잘하지 않는다.
되지 않는 걸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은 철없던 시절에나 가능한 일.
지금은 저들을 믿고 일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저들만 그냥 보낼 수는 없겠죠. 두 분. 부탁드려요.”
예카테리나는 자신의 두 부관인 바탈리, 바렌치나 남매에게 마법사들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두 부관은 뛰어난 기사다.
내전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실전 경험도 풍부하다.
마스터 단계는 아니지만, 그 바로 아래라 할 수 있는 상급 기사.
그리고 각 부관이 이끄는 호위 기사들 또한 상당한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들이 함께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왕님.”
“명을 받들겠습니다.”
바탈리와 바렌치나는 여왕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고집을 부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마법사들이 실패해서 지맥이 터진다면 그때는 이 자리의 모두가 죽는다.
그러니 여왕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그들은 마법사들을 도와 지맥을 파괴하려는 검은 여명회를 막아야 했다.
“두 분이라면 잘할 거예요.”
예카테리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짓자 두 남매와 그 뒤에 도열한 기사들이 모두 부복했다.
이번 임무에 출정식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격식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으니까.
마법사들은 각 팀 단위로 움직이며 방벽 바깥으로 향했다.
전초 기지에 남은 사람들은 부디 그들이 성공하길 바라며 간절한 시선으로 배웅해 주었다.
‘이거 참.’
루드거는 구 마탑의 마법사들과 함께였다.
신 마탑이면 모를까 원래부터 사이가 안 좋던 자들이라 그런지 루드거의 존재는 붕 뜰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른 자유 소속 신분 마법사들이 꽤 있어서 외롭진 않다는 것이려나.
“잘해 보세.”
루드거는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데릭 올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유 신분의 지도자 격인 그 또한 이 팀과 움직이고 있었다.
루드거는 데릭을 빤히 응시하며 답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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