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96화 나쁜 소식 (1)

 ◈ 396화 나쁜 소식 (1)




“거대 괴물인가. 오랜만이군.”




루드거는 지팡이의 끝에 마력을 모아 그것을 길게 뽑았다.




지팡이 끝에 맺힌 마력이 날카롭게 벼려져 거대한 칼날처럼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무언가를 베기보다는 찌르기에 특화되어 있었다.




“어딜 가서도 패자로 군림하겠지만, 애석하게도 이번엔 상대가 나빴어.”




대부분 마법사나 기사들은 거대한 짐승과 싸울 일이 없다.




이 세상에는 크립티드가 존재하지만, 그런 크립티드들도 특별한 오지 같은 곳이 아니고선 어지간하면 마주할 일도 없다.




두르망 왕국의 제보당 같은 케이스가 극히 예외일 뿐.




이런 산길에서 거대한 짐승을, 그것도 마력으로 강화된 괴물을 만나서 싸울 일은 없다.




하지만 루드거는 달랐다.




그는 이런 괴물들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저 프로가 아니었다.




그는 사냥꾼의 정점이었다.




무려 그 제보당의 괴수를 단신으로 사냥했다.




지금 눈앞의 자이언트 베어보다 훨씬 더 거대하며 무시무시한 힘을 보이던 그 괴물을 말이다.




루드거는 당연히 괴물을 상대하는 법을 아주 잘 알았다.




‘놈들은 기본적으로 몸이 아주 튼튼하지. 그것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말이야.’




거대한 육신을 맨땅 위에서 멀쩡하게 움직이려면, 육체는 그 하중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뼈는 굵고 강철보다 단단하며, 그 위를 뒤덮는 근섬유는 탄력적이며 촘촘하다.




거기에 합성 고무를 뛰어넘는 질긴 가죽과 억센 털까지.




그것을 단번에 꿰뚫는 것은 마스터급 기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거대 짐승의 몸통을 공격하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다.




짐승이라고 얕보다간 끄떡도 하지 않는 모습에 당혹스러움만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어디인가.




‘눈과 귀.’




아무리 강철 같은 피부로 보호를 받아도 안구와 귀 안쪽은 무를 수밖에 없다.




특히 눈은 시야를 차단하고, 적을 혼란으로 몰고 가기 때문에 가장 최우선으로 공격해야 할 부위였다.




바로 지금처럼.




푸욱!




루드거의 지팡이가 쓰러진 자이언트 베어의 한쪽 눈에 깊게 박혔다.




아무리 넘어졌다고 해도 어지간한 담력과 세밀함이 없으면 하기 힘든 공격.




‘단순히 시야를 빼앗는 것에서 그치면 안 돼. 여기서 끝낼 각오로 간다.’




루드거는 마력을 더 불어넣어 그대로 지팡이 끝에서 터뜨리려고 했다.




마력이 시신경을 통해 두개골 안쪽까지 뚫고 들어가면 머릿속을 곤죽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죽음의 위기를 느낀 자이언트 베어가 반응을 보였다.




우워어어어!




고함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전신에서 마력이 방출됐다.




충격파처럼 터져 나온 마력 파장이 루드거의 몸을 강타했다.




아주 한순간이지만, 코앞에서 폭풍이 몰아친 것만 같았다.




루드거의 몸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갔다.




루드거는 직전에 방어 마법을 둘러 직접적인 피해를 상쇄했다.




루드거는 허공에서 자세를 잡으며 지면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자이언트 베어는 전신에서 마나를 흘리며 몸을 천천히 일으키는 중이었다.




마력의 밀도가 얼마나 높은지, 주위에 닿는 나무가 파스스 가루처럼 바스러졌다.




생긴 것은 곰인데 하는 짓은 고슴도치가 따로 없다.




‘아쉽군. 한 번에 끝낼 기회였는데.’




루드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점에 만족하기로 했다.




곰의 왼쪽 눈에서는 붉은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한쪽 눈이 곤죽이 되었으니, 녀석은 이제 커다란 제약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자네 괜찮나?”




데릭 올슨이 다가오며 루드거의 상태를 살폈다.




루드거는 옷깃에 묻은 나무 부스러기를 손으로 가볍게 툭툭 털어 내며 답했다.




“예. 아슬아슬했지만 괜찮습니다.”




“……이거 참.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 마법사가 보통 그런 싸움 방식을 사용하나?”




“예외의 상황에서는 예외의 방식으로 대응해야죠. 군에서 배운 겁니다.”




그럴 리가.




군만큼 주어진 매뉴얼과 규정대로 행동하는 곳이 없다.




루드거의 행동은 어떻게 보면 군법을 위반하는 돌발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데릭은 그것을 차마 따지지 못했다.




아직 저 괴물 곰은 살아 있었다.




“눈에 상처를 입히긴 했지만, 금방 재생할지도 모르네. 이곳의 짐승들은 재생력도 탁월하니까. 저 덩치면, 1분도 안 걸려서 회복하겠지.”




“그것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지팡이를 한 번 크게 휘둘렀다.




촤악!




지팡이에 맺힌 자이언트 베어의 피가 지면에 뿌려지더니, 이윽고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연기를 냈다.




데릭은 코끝에 스치는 냄새를 맡고는 눈을 크게 떴다.




“독? 그것도 상당히 강하군.”




“찔러 넣기 전에 지팡이 끝에 발라 뒀습니다.”




거대한 짐승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사용해야 했다.




놈들은 체격부터 인간을 아득히 벗어난 존재이기에, 당연히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




거대한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들은 마취 총과 독, 함정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체급부터 공평한 싸움이 아니니, 이쪽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물론 어중간한 독은 사용하지 않는다.




저 거대한 덩치를 치사량에 이르게 하려면, 독액은 한 사발을 들이부어도 부족하다.




그렇기에 루드거가 사용한 독은 치사량에 이르게 만들기보다는 지독할 정도로 지효성이 길었다.




상처의 재생을 방해하고, 피부를 마비시키며 세포를 괴사시킨다.




일전에 지하 수로에서 크리스 베니모어가 사용한 맹독 안개를 보고 영감을 받아 벨라루나에게 부탁해서 만든 물건이었다.




그 덕분인지 괴물 곰은 아직도 눈을 재생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고통 때문에 난동을 피워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녀석은 네 다리로 몸을 최대한 납작 엎드린 채 마력을 마구잡이로 뿌리고 있었다.




“오래는 못 갈 것 같네. 저렇게 마력을 뿜어낸다면, 독성도 금방 밀어낼 테니까.”




“하지만 저 괴물이 지닌 마나를 소진시키기엔 충분한 시간이겠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자이언트 베어는 마나의 잔량을 생각하지 않고 계속 방출하고 있었다.




그것은 시신경을 타고 흐르는 독소가 뇌에 전달되지 않게 막아 내는 것도 있지만, 마법사들의 공격에 방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마력의 오라는 닿기만 해도 모든 걸 분쇄한다.




그야말로 절대 방어가 따로 없다.




바꿔 말하면, 저 정도 밀도의 마력을 흘려내는 시점에서 녀석은 무리하고 있었다.




강하고 영악하다고 해도 결국엔 짐승.




놈에겐 나중을 위해 힘을 비축한다는 발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서 추가타를 넣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쉽군.’




원래 이렇게 승기를 잡았을 때 쉬지 않고 몰아쳐야 했다.




쉬지 않고 몰아쳐야,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숨겨 놓은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는 함부로 선보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보는 눈이 많은 이 자리 자체가 루드거에겐 제약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래도 세세히 따지면 지금 상황이 제일 나아.’




제보당의 괴수와 싸우던 때와는 비교가 안 된다.




일단 상대의 체급이 다르다.




제보당의 괴수와 비교하면 저 자이언트 베어는 그냥 봉제 곰 인형이나 다름없다.




그 봉제 곰 인형이 기사를 찢어 죽일 수 있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그건 루드거에겐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루드거는 끝없는 악몽이 펼쳐진 도시를 기억한다.




코끝에 이는 썩은 피 냄새와 짐승의 누린 악취.




영원한 굶주림에 시달리는 짐승의 울음소리.




새까만 어둠 속에서 피어오르는 무수한 붉은 눈동자들까지.




벽과 철제 난간, 건물의 지붕에서 천천히 기어오며 꿈틀거리던 짐승들에겐 숨길 수 없는 피 냄새가 났다.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살의의 파도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하늘에 휘영청 떠오른 붉은 달에 닿을 정도의 거대한 짐승이었다.




루드거는 지옥 속에서 그런 괴물과 싸웠고.




녀석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오히려 저 자이언트 베어는 애교나 다름없다.




‘게다가 지금은 무려 100명이나 되는 지원군이 있지.’




다들 당황해서 얼어붙어 있지만, 자이언트 베어가 움직임을 멈추자 하나둘 이성을 되찾아 가는 중이었다.




“데릭 님. 제가 신호를 주면, 일제사격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알겠네.”




데릭도 지금이 저 괴물 곰을 쓰러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깨달았다.




그는 곧바로 구 마탑의 지휘자인 그레고리엄에게도 다가가 상황을 전달했다.




명령이 하달되고, 마법사들이 진열을 유지하며 마력을 모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자이언트 베어는 계속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뚜렷하게 형상화된 마력은 마치 고치처럼 자이언트 베어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저 정도 밀도의 마력을 계속 뿜어내는 걸 보면 과연 포식자는 포식자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속할 수는 없다.




저 무의미한 소모전은 결국에 끝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고, 루드거의 예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왔다.’




자이언트 베어가 내뿜던 마력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피부 밖으로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던 마력이 서서히 줄어들더니, 이윽고 자이언트 베어의 맨피부를 드러냈다.




맨피부라 하더라도 튼튼하지만, 조금 전 마력의 껍질에 보호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루드거는 데릭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릭은 곧바로 손에 마력을 모아 머리 위를 향해 쏘아 올렸다.




퍼엉!




마력이 화려한 빛을 내며 폭발했다.




그것이 신호였다.




“지금이다! 전부 쏴!”




80여 명의 마법사가 일제히 마법을 쏘았다.




각자 사용할 수 있는 높은 화력의 마법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자이언트 베어에게 쏟아졌다.




동시에 날아간 마법은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자이언트 베어를 휩쓸었다.




콰콰콰쾅!




귀청을 찢어 버릴 것만 같은 폭발이 연달아 일어났다.




주변 나무들이 폭발의 충격에 찢겨 나가며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크게 흔들리며 뿌연 먼지구름이 높게 치솟아 올랐다.




이 광경을 자아낸 마법사들조차 순간이지만 놀랐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이윽고 먼지구름이 걷히며 폭심지 현장을 고스란히 비춰 보였다.




“사, 살아 있다고?”




놀랍게도 자이언트 베어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마법이 쏟아지기 전, 자이언트 베어는 남은 바위의 마력을 전부 자신의 피부에 두른 것이었다.




하지만 상태는 좋지 않았다.




바위 갑옷은 폭발에 휩쓸려 반파되었고, 드러난 피부는 상처로 가득했다.




일부는 뼈가 보일 정도로 상처가 심각했다.




사실상 숨만 붙어 있는 반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




“어, 어어? 놈이 일어난다!”




자이언트 베어는 믿기지 않는 생존력을 보이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자이언트 베어는 마법사 무리, 그중에서 특히 루드거를 강렬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우워어어어!




곰이 크게 포효했다.




마법사들은 녀석이 달려들려는 것이 아닐까 하고 긴장했다.




상처 입은 포식자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녀석이 여기서 갑자기 죽을 각오로 싸우려고 든다면…….




그 순간 자이언트 베어가 등을 보였다.




“어?”




잔뜩 긴장하던 마법사들이 당황했다.




죽음을 불사를 것처럼 굴던 자이언트 베어가 택한 행동은 도주였던 것이다.




“가 버렸네.”




싸움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마법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괴물이 마지막까지 날뛰었다면 반드시 피해자가 나왔을 테니까.




사실 조금 전에도 누군가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무도 죽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선두에서 싸워 준 사람 덕분이었다.




루드거 첼리시와 데릭 올슨, 그리고 바렌치나.




셋의 활약이 없었다면 피해자가 꽤나 속출했으리라.




“루드거 첼리시. 평범한 교사는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저건 대체…….”




“보통 담력이 아니군. 군에서 활동했다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니었나.”




이쪽을 향하는 시선에 데릭은 어깨를 으쓱이며 루드거에게 물었다.




“사람들에게 관심받는 기분은 어떤가. 선생.”




“별로 특이할 것도 없군요.”




“그보다 대체 무기에 독을 바르고 싸우는 방법은 어디서 배운 건가? 설마 그것도 군대에서 배웠나?”




“예. 맞습니다.”




“이거 참. 나도 선생처럼 되려면 이 나이 먹고 입대나 해야 하나 싶군.”




“그건 좀 끔찍한 소리군요.”




데릭은 루드거의 농담에 피식 웃으면서도 상황을 정리하는 걸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자이언트 베어를 피해 없이 쫓아낸 것은 다행이지만, 그들의 애초 목적은 곰 사냥이 아니었다.




“그래도 놈들도 이제 남은 수단은 다 쓴 모양이로군. 마법 함정도 없는 데다가, 저 괴물 곰 덕분에 다른 짐승들은 얼쩡거리지도 않아.”




“동의합니다. 어서 움직이죠.”




바렌치나도 데릭의 말에 수긍하며 채비를 갖췄다.




콰아앙!




하지만 저 산길 위에서 터져 나오는 거대한 폭발에, 마법사들은 짧은 정비 시간마저 허락받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 가지가지 하는군.’




저 방향에서 벌어진 폭발.




저곳은, 계산상 카사르 분지의 다섯 지맥 중 하나가 흐르는 곳이었다.




바렌치나가 침음성을 흘렸다.




“설마, 놈들이 찾은 건가?”




“아직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루드거는 바렌치나의 말을 부정했다.




폭발은 연달아 들려왔지만, 저택의 지맥이 분출했을 때와 같은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다.




놈들도 다급해지니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본 것이다.




쿵. 쿵.




폭발은 주기적으로 울려 퍼졌다.




지맥의 핵을 찾지 못했다면, 찾을 때까지 터뜨리겠다는 의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직은 괜찮다. 현재까지 터진 지맥은 저택이 있던 곳 하나뿐이니…….’




루드거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카사르 분지 전체를 뒤덮은 새하얀 안개의 돔이 한차례 크게 요동쳤다.




마법사들은 느꼈다.




아주 순간이지만, 거대한 무언가가 폭발했다는 걸.




그것은 지금 저 산길 위에서 터지는 폭발물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더 거대하고.




더 위험했다.




“설마……?”




바렌치나는 높게 솟은 나무의 가지를 연달아 밟으며 나무 꼭대기까지 솟아올랐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 굳은 표정의 바렌치나가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주었다.




“지맥 중 하나가 터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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